4.3평화문학상...'무명천할머니'.'2세대 댓글부대'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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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문학상...'무명천할머니'.'2세대 댓글부대'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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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보편.특수성 갖춘 기념비적 작품"
'2세대 댓글부대'..."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
최은묵 작가, 장강명 작가.<헤드라인제주>

최은묵 작가(대전)의 시(詩) '무명천 할머니'와 장강명 작가(서울)의 소설 '2세대 댓글부대'가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에 당선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택)는 전국 공모를 통해 접수받은 시 1026편, 소설 55편에 대한 심사를 진행한 결과 두 작품이 당선작으로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 당선작 '무명천 할머니'는 4.3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았던 할머니의 신산한 삶을 바탕으로 제주의 4.3과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바다를 제주의 가락에 담아, 잔잔하면서도 끝이 살아 있는 언어로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예년에 비해 작품의 수준이 고루 향상됐으며, 당선작의 경우 문학의 보편성과 4.3문학상의 특수성을 고루 갖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소설 당선작 '2세대 댓글부대'는 현재 저변으로 확대된 인터넷 저널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치권력이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그것의 하수인으로 살다 결국 용도 폐기되는 낙오자들의 참혹한 조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소위 댓글정치가 지닌 대중조작의 폭력성을 다뤘다는 평이다.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경쾌하고 날렵한 문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 치밀한 취재가 바탕이 된 현장감 등을 높이 평가했다. 또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폭력을 드러내 궁극적으로 평화를 소망케 하는 작품성에 당선의 영광을 안겼다.

심사는 시 부문에 고은, 김수열, 김정환 위원, 소설 부문에 염무웅, 이경자, 현기영 위원이 진행했다.

시상식은 별도 일정에 의해 추후 실시되며, 최은묵 작가에게는 시 부문 2000만원, 장강명 작가에게는 소설 부문 7000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수상작품은 조만간 공식 출판을 통해 독자들을 만난다.

한편 제주4·3평화문학상은 4.3의 아픈 상처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함과 아울러 평화와 인권.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도민화합과 제주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자 지난 2012년 3월 제정해 제주도가 주관해왔으며, 올해부터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이문교)이 업무위탁을 받아 주관하고 있다.

제1회 4·3문학상은 현택훈의 시 '곤을동',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가, 제2회 4·3문학상은 박은영의 시 '북촌리의 봄', 양영수의 소설 '불타는 섬'이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됐으며, 이중 소설은 각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발간, 절찬리에 판매된 바 있다.<헤드라인제주>

무명천 할머니 / 최은묵

할머니 얼굴에는 동굴이 있죠. 동굴은
쇠약한 바람의 입
고장 난 피리처럼 구멍에서 침식된 총소리가 쏟아져요
해풍이 불 때면
바람의 말을 새로 배우느라
밤새 빈병 소리를 내던 할머니
바닷물이 턱에 머물다 가면
정낭 올리듯
동굴 입구를 무명천으로 감싸야만 했어요
저 흰 천은 누굴 위한 비석인지
얼굴에 백비 동여맨 채 바다를 읽는
무명천 할머니
파도가 절벽을 적시듯 침을 흘려요
침은 닦지 못한 비명
숱한 어둠이 동굴에 터를 잡을 때마다
남몰래 뜰에 나와 달빛을 채워 넣었죠
수명을 다한 빛이 녹슬고
완성되지 못한 낱말들 진물처럼 떨어지면
새 무명천 꺼내 빗장을 걸던 할머니, 혼자 떠나요
바람의 언어를 중얼거리며
동굴 벽 짚고 떠나요
이제 동굴은 메워지고 피리소리는 멈추겠지요
잃어버린 턱을 채우려는 듯
월령리(月令里) 백년초가 바람의 말 속삭이면
할머니, 무명천 벗고 가시처럼 다녀가겠죠

*故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4·3 당시 폭도로 오인 받아 경찰이 쏜 총에 턱을 잃었다. 이후 200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50여년을 얼굴에 무명천을 두르고 살았다.

<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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