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차고지증명제 개선방안, '답정너'식 용역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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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차고지증명제 개선방안, '답정너'식 용역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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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차고지증명제 개선 용역에 의구심이 쏠리는 이유
'헌법적 가치' 침묵하고, '미래의 가치' 강조하며 대안 검토...왜?
위헌이라면 자동폐지 불구, '위헌성 검토' 왜 전제되지 않았을까

서민만 차별하는 정책, 실효성이 없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혹평이 쏟아지는 제주 차고지증명제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도민사회에서 강력한 폐지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데다,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적 정책이라는 이유로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 그야말로 퇴출 위기의 벼랑 끝에 몰려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이 제도의 개선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 달 27일 열린 도민토론회를 지켜보면, 제주도정의 행보가 왠지 미덥지 못함을 준다. 토론회에서는 제주연구원에 의뢰해 시행 중인 '차고지증명제 실태조사 및 실효성 확보방안' 연구용역의 개괄적 진행상황이 공개됐는데, 오히려 이 내용을 두고 많은 의구심이 쏠리고 있다.

27일 열린 도민토론회 발표 PT에서 제시한 용역진의 키워드.

마치 답을 정해놓고 연구를 진행하듯, '답정너' 식으로 던져진 화두가 발단이 됐다. "차고지증명제는 현재와 미래 중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입니다."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이날 발표한 내용을 보면, 차고지증명제에 대한 도민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제주도민 10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폐지' 의견(49.9%)이 월등히 높았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라고 묻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51.5%가 "필요없다"고 답했다. "필요 있다"는 응답은 30.4%에 불과했다. 사실상 도민여론은 '폐지'에 있음을 확인한 조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PT)에서 전한 메시지의 전체적 흐름은 묘했다. 내용 구성은 차고지증명제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기술하려는 듯 했다.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검토 의견을 먼저 제시한 후,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언급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 중에서는 △자동차 소유 및 관리측면 자기결정권 제한 △궁극적으로 행복추구권 침해 △추구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비교, 과잉금지 원칙 위배 우려 △부유한 주민들과 무주택자·서민간 형평성 어긋나는 상황 등 기본권 상충문제와 관련한 제기되는 내용들도 나열적으로 제시했다.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에서는 차고지증명제 시행 미래상이란 사진을 제시하면서 '장기적으로 비용보다 편익이 큰 정책'이라고 했다. '두 차례 차고지증명제 시행 연기로부터의 교훈'이라며 그간 연기 없이 시행되었다면 지금쯤 그 효과 체감은 컸을 것이란 점도 강조했다. 

효과 체감이 컸을 것이라는 설명에서 현재 제기되는 본질적 문제, 즉 서민 차별의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두 차례 연기로부터 얻은 교훈이라고 했지만, 효과 체감이 컸을 것이란 근거는 뭔지 알 수가 없다.

이날 프리젠테이션에서 결정적 논란을 부른 것은 폐지 이유와 존치 이유를 설명한 후 이어진 슬라이드의 내용이었다. '차고지증명제는 현재와 미래 중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입니다.'라는 키워드는 의아스러움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차고지증명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거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가치에만 매몰된 근시안적 사고라는 힐난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차고지증명제가 당초 시행취지와 달리 차량 억제 및 주차난 해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집 없는 서민들과 청년들에 대한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고지증명제가 당초 시행취지와 달리 차량 억제 및 주차난 해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집 없는 서민들과 청년들에 대한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용역진은 왜 '현재의 가치 vs 미래의 가치' 프레임을 던졌을까.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폐지 논리를 덮음과 동시에 '개선 또는 보완'으로 갈 수 있는 당위성과 명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도민 설문에서 '제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이라는 전제에서도 이 정책에 대해 필요없다는 의견이 매우 우세하게 나타났는데도, 조사 결과에 대한 의미 해석은 추가되지 않았다. 다만, 추진방향에서 '폐지', '유예', '유지'라는 세가지 방향을 제시하며, "다양한 대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3가지 대안에서도 '유예'나 '유지(완화)'에 대한 설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앞서 던져진 '미래의 가치'라는 키워드는, 결국 3가지 대안에 대한 도민들의 판단 과정에서 폐지 보다는 보완.개선 방향으로 가게끔 하는, 점화(priming) 효과를 기대해 만들어낸 설정으로 볼 수 있다.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설명회에서, 뜬금없는 '미래가치' 운운은 다소 황당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 분출되는 위헌성 논란, 왜 제대로 검토하지 않나?

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내용이 용역의 핵심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번 용역의 과업 수행기간은 6개월로, 내년 1월 중 최종 결과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만에 하나 이번 차고지증명제의 문제를 '현재의 가치 vs 미래의 가치'라는 전제로 판단했다면 실로 걱정이 크다. 전제 설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용역진이 1차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은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에 대한 것이어야 했다. 

지금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키워드는 '차별'과 '과도한 제약'이다. 집없고 가난한 서민을 차별하고, 무주택 청년을 차별하고, 차고지 공간이 없는 곳에 사는 서민을 차별하는 등의 문제다. 여기에 집 없으면 차를 사지도 못하게 하고, 차고지가 없는 집으로는 이사도 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헌법적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에 다름 없다. 

그래서 헌법적 권리 침해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달 29일 차고지증명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위헌적 요소 때문이다. 

이번 헌법소원의 위헌 심판 대상 조문은 차고지 증명제 특례를 명시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제428조(자동차 관리에 관한 특례)다.

이 조항은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자동차를 신규.변경 또는 이전 등록하려는 자는 그 등록을 신청할 때에 그 자동차의 차고지를 확보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도지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나아가 "차고지증명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자동차의 신규.변경 또는 이전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는 이 특례 규정에 따라 조례를 통해 차고지증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청구자는 이 조항의 위헌성을 크게 3가지 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다. 차고지증명제가 평등권(헌법 제11조), 재산권(헌법 제23조), 거주.이전의 자유(헌법 제14조),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 등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주택 서민들뿐만 아니라 차고지 확보공간이 없는 원도심 등의 거주자, 아직 내집 마련을 못한 청년 등에서 크게 공감하는 내용이다.  

◇ '헌법적 가치' 침묵하며 '미래의 가치' 전제로 검토?

따라서 존폐 여부에 대한 검토를 한다면, 연구설계의 1차적 전제는 헌법적 가치 훼손 부분에 대한 검토가 그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만에 하나 헌재에서 제주특별법 제428조가 위헌이라고 결정한다면, 차고지증명제는 자동적으로 전면 폐지되기 때문이다. 

위헌적 요소에 대한 검토가 선행된 후, 평등권 침해, 재산권 침해, 주거.이전의 자유 침해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어떻게 해소하거나 상쇄시킬 것인지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거나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는 위헌성 검토를 끝낸 후 2차적으로 진행해도 늦지 않다. 위헌 결정이 내려진다면 정책이 자동 폐지되면서 굳이 대안적 개선 방안은 찾을 필요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역진이 토론회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도민들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미래의 가치' 운운하는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수밖에 없다. '답정너'식 용역으로 전락되지나 않을까.
 
차고지증명제 존폐에 대한 검토는, 주민 설득을 위한 부분적 손질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전제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제도를 유지다고 하더라도, 최소 헌재의 판단 여부에 관계없이 제기된 위헌성 논란에 대해서는 털고 가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위헌성 검토가 전제되지 않은 용역을 그대로 진행한다면, 도민들은 그 결과물을 얼마나 수긍하고 신뢰할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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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 2024-12-10 17:22:43 | 210.***.***.114
차고지 증명제 서민 악법 폐지하라

함량 미달 용역 2024-12-02 19:25:08 | 175.***.***.190
미래의 가치 문제랍니다. 허허허
용역하는 분들의 고급스런 언어이죠. 백성은 무슨 말인지 이해 안되는....
오영훈 도정 출범 후 이런식 용어 남발하는 것이 우연일까요.
차고지증명제 용역에서 그 민낯이 드러났네요
이런 용역 돈 아까우니 지금이라도 그냥 중단시키는게 낫지 않을까요

도민 2024-12-02 17:31:09 | 1.***.***.134
차고지를
점포로 용도변경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