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덩어리 370개 항목 사업비 잘라, 1547건에 증액 배분
읍.면.동 사업비 대거 증액...오영훈 지사, 증액항목에 "모두 동의"

제주특별자치도의 새해 예산안이 10일 제주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확정 편성됐다. 일반회계 6조 1619억원, 특별회계 1조4164억원 등 총 7조5783억원 규모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서는 5.1% 증가했다.
내년 예산안은 당초 직전 회기인 정례회 마지막 날인 4일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사상 초유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인해 자동 폐회하면서 미뤄졌었다.
10일 오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계수조정을 마치고 최종 의결한 후, 오후 열린 제434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됐다.
이번 계수조정 결과 세출예산에서 감액 및 증액 조정된 사업비는 총 598억7000만원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역대 예산안 감액 조정 규모를 보면, △2020년 예산안 393억3000만원 △2021년 예산안 411억2300만원 △2022년 예산안 499억5000만원 △2023년 예산안 538억원 △2024년 예산안 511억원이었다.
이번에는 전년고 비교해 87억원 늘었다.
물론 이번 최대 규모 감액 조정은 상임위원회 사전 심사 단계에서 이미 예고됐다. 지난 달 21일까지 이뤄진 5개 상임위원회의 사전 심사 결과 세출예산 감액 규모는 337개 항목에 총 546억6100만원에 달했다.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는 한 때 600억원대 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최종적으로 598억원대로 정리했다. 다분히 과다한 조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을 의식해 '600억원대'를 살짝 피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의도적으로 1억3000만원이 모자라게 조정해 600억원을 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감액과 증액의 타당성이다.
예결위가 이번에 감액한 사업비 항목은 상임위에서 조정한 항목(337건) 보다 33건 늘어난 370건이다. 반면 증액한 예산 항목은 1547건에 이른다. 거의 5배 많은 수치다.
이는 세출 예산에서 큰 덩이라 사업비들을 크게 크게 삭감한 후,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 5배 가량 늘리며 분배를 했음을 보여준다.
증액된 사업비 목록을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읍.면.동 사업비다. 43개 읍.면.동,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행사운영비나 민간사업비 등이 늘어났다. 예산 편성 단계에서 읍.면.동 사업비들이 불합리하게 편성된 점도 있었지만,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까지 더해지며 '증액 잔치'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간단체의 각종 행사 개최에 따른 민간경상보조금 등도 대거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액 항목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더욱 많았다. 특히 상임위와 예결위 심사 단계에서 날선 비판과 의구심을 제기했던 예산들이 부분적 손질만 한 후 원안 기조를 유지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를 테면 경제적 타당성 문제가 집중 제기됐던 제주~중국 화물선 취항 관련 5건의 사업비(90억원)가 부분 조정을 하는 선에서 확정되면서 내년 사업 추진이 이뤄지게 됐다.
당초 농수축경제위원회 심사 단계에서는 다음달 취항하는 제주~중국 화물선이 빈 배로 운항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집중 제기됐다. 중요한 것은 배에 실을 물동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제주도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 있으나, 경제적 타당성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향후 선박 운영 과정에서 물동량이 부족할 경우 매해 발생하는 손실비용을 보전하는데 따른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게 표출됐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5건의 사업비 90억원 중 보세구역 검사 및 검색장비 설치비 21억원 중 14억원, 제주항 화물 유치 지원 10억원 중 4억6000만원, 제주~중국 간 신규 항로 운영 손실비용 보전 45억원 중 4억원 등 22억원에 대한 감액 조정만 이뤄졌다.
내년에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조정을 한 것으로, 도의회에서 '사업 승인'이 이뤄진 셈이다.
행정자치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던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관련 연구용역 진행 등과 관련해서도 최종적으로 관련 예산 21억원이 원안 동의됐다.
'차 없는 거리 범도민 걷기행사'와 관련해서는 개최 장소 등의 적절성을 놓고 많은 논란이 이어졌으나 3억원 중 1억원만 감액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행사 개최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오름 불 놓기를 명시한 조례안 의결에 대해 제주도가 재의 요구를 하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제주들불축제 관련 내년 예산 17억원은 원안대로 반영됐다. 다만, 부대의견으로 산림보호법 위반 논란과 관련, 사전 연구조사를 하도록 했다.
이 밖에 증액할 항목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감액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버스업체 유류세 연동보조금 74억원 중 15억원, 택시유류세 연동보조금 45억원 중 8억원, 화물운수업계 유류세 연동보조금 123억원 중 24억원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예산의 손질은 역대 최대 규모로 이뤄졌고, 내용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도 많았으나 제주도정의 태도는 예전과 달랐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본회의 예산안 표결에 앞서 이뤄진 증액예산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자, "동의한다"며 계수조정 결과를 그대로 수용했다.
지난해에는 증액사업 항목에 있어 선별적으로 '부동의'를 표한 바 있는데, 올해에는 동의를 한 것이다.
오영훈 지사는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의결에 따른 인사말씀'을 통해 " 오늘 의결해 주신 새해 예산은 민생 안정과 경제 활력, 나아가, 도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소중한 재원으로 쓰일 것"이라며 의회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계수조정 결과와 관련해, 도의회에서는 계수조정 협의 과정에서 제주도정이 의회에서 제시한 증액사업 목록에서 동의와 부동의 여부를 표하면, 부동의 사업을 제외하고 동의사업 위주로 증액 편성하면서 원만하게 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오 지사가 읍면동 민생사업과 관련해서는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할 것을 주문하면서, 협의가 보다 원만해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600억에 이르는 대규모 손질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의외라는 평가다. 탄핵 정국 속에서 예산 갈등으로 정면 대립하는 상황은 안된다는 심리적 부담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그럼에도 2025년 예산안 처리는 역대급 손질에도 불구하고, '쿨한 동의'로 갈등 없이 마무리하게 됐다. <헤드라인제주>
거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