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해군이 자랑스럽고, 경찰이 공정하다고 느끼십니까?"
구럼비는 말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어제(18일) 강정마을에서는 최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이름에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참 복잡하죠?)의 검증 결과와 구럼비 해안에 대한 출입문제 등으로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여론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가운데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평화사수! 범국민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저 역시 간만에 강정에 갔지만, 불행하게도 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려는데 아주 황당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럼비 해안에 있던 공연무대를 해군기지 건설업체들이 철거하려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구럼비 해안에 있던 공연무대는 저에게는 사연이 참 많은 시설물입니다.
2008년 처음 만들어지고, 태풍에 바람에 시달리면서 많이 망가져 있던 것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2011년 5월에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나름 유명했던 23시간 순수한 수작업으로 수를 놓은 현수막 '구럼비를 지켜라'가 걸려있던 그 무대가 맞습니다. 수많은 올레꾼들의 사랑을 받았었고, 많은 문화제가 진행되었던 무대였습니다.

나름 유명했던 23시간 순수한 수작업 현수막도 바람에 날려가 버렸는데 아마 누군가 개인소장용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다시 공연무대를 만들자는 얘기들이 있었고, 몇 명의 사람들이 사비를 털어 재료를 조달하고, 이번에는 어떤 태풍에도 끄덕없는 무대를 만들자며 다짐을 하면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2011년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작업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전기용접 해본 사람들은 압니다.
더운 여름날 철제각재를 재단해본 사람은 압니다.
더운 여름날 베니어판을 날라본 사람은 압니다.
드디어 완성되던 날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아마추어치고는 정말 튼튼히 잘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9월 2일 새벽. 경찰이 투입되어 구럼비로 가는 길이 펜스에 가로막혀 버렸고, 한번도 사용하지 못한 그 무대는 구럼비 바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엇습니다.
언제인가 우리들이 돌아가서 다시 눈물과 열정, 바람으로 가득차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공연을 다시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무대가 철거된다고 들었습니다. 범칙금 2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제 추억의 문제이기도 하고 제 개인 재산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회는 뒷전에 두고 구럼비로 가는 카약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실 저는 물을 무서워합니다. 어릴적 물에 빠져 죽을뻔 한 기억 때문에 수영도 잘 못합니다.)
6개월만에 보는 구럼비 해안에서는 한 시민이 경찰에게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보고 집회한다고 주장하는가?'
경찰이 주장합니다.
'저기 현수막이 있으니 불법집회다. 당장 해산하라.'
가리키는 곳을 보니 '구럼비와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구가 있는 현수막입니다.
'뭔 소리래?' 저는 아직까지도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주공항 간판 앞에서 만난 사람은 다 집회하는 것인지 궁긍합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질문하던 시민이 바로 제 눈앞에서 강제 연행되었고, 이를 보고 항의하던 판사출신 법학과 교수는 '뭐 이런 일이 있는가? 나도 연행해라' 고 말하자마자 역시 바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병력의 호위 하에 건설업체 직원들이 구럼비 해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손에 흔히 우리가 오함마라고 부르는 장비를 들고 말입니다.
무대위에서 올라가서 '이건 사유재산이고 당신들은 이것을 철거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봤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경찰들의 '얘도 연행해' 한마디에 저 역시 무력화되었습니다. 미란다 원칙같은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체포해야할 어린아이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들은 구럼비 바위를 뛰어다니면서 사람사냥을 하고 있었고, 건설업체 직원들은 신나게 내가 만든 그 무대를 부수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때 화가 나기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잡혀온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야? '
'무대 위에서 라면 먹으면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와 경범죄 위반이라고 스티커를 발급하겠다고 해서 신분증을 제시했는데, 건설업체 직원들이 경찰 책임자에게 뭐라 하더니 불법집회라고 돌변하대.'
'그래서? '
'뭘 그래서야. 불법집회라고 하니 그럼 우리 집회 안 하겠다고 흩어졌는데 쫒아와서 연행당한거지 뭐.'
차근차근 당시의 상황을 추적해 봤습니다.
불법집회였는가? 아니었습니다. 집회할 생각도 없었고 집회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범칙금스티커 발급하겠다고 신분증을 건네받은 경찰도 있었습니다.
공동의 집단행동을 했는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관람부터 기도 드리러 온 성직자, 나같이 무대 때문에 온 사람 각자 목적이 틀렸고, 당시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각기 따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구럼비에 들어간 모든 사람을 연행했는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기 직전에 경기도의회 의원 2분과 기자 2분이 구럼비 해안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분들이 나오자 경찰들이 바로 투입되었습니다.
건설업체 직원들과 경찰의 행동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었습니다. 건설업체 직원들이 먼저 공유수면에 있는 시설물을 철거하겠다고 왔다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철수한 후 경찰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건설업체 직원들이 무대철거는 합법적인 것인가? 아니었습니다. 공유수면에 대한 시설물의 철거는 행정기관(서귀포시나 제주도청)만이 할 수 있는데 철거계고장 한 장 없었습니다.
그럼 왜 경찰은 무리하게 14명이나 연행하면서 법집행을 한 것일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사항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권력을 잡은 높은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건설회사 직원들의 불법행위가 아니라 애국의 충정이었고, 그런 애국의 충정을 몰라보고 그 앞에서 라면먹고, 기타치면 놀고 있는 사람들은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였나 봅니다.
아. 한가지 더. 연행된 14명은 조사도 받지 않은 상태로 6시간만에 모두 강제로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려하는 것은 해군기지 공사현장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없는데도 일반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자기 땅이라 우기면서, 공권력을 자기마음대로 행사하는 그들이 정작 해군기지가 완공되어서 군사경계지역을 선포할 경우 더 많은 우격다짐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제가 본 강정마을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 그런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래도 대한민국 해군이 자랑스럽고, 대한민국 경찰이 공정하다고 느껴야 합니까? <헤드라인제주>
김국상의 '강정현장 이야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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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주민자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국상님은 몇달째 강정마을에 있습니다. 강정을 꼭 지켜야 한다는 그의 희망이 간절합니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강정현장 이야기>는 지금 강정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언제까지 이 이야기가 이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진행과정과 끝, 그것이 바로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당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