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도 생명이 있는 것일까? 제주 올레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지난 주 일본 규슈에 네 개의 올레가 새로 탄생 한 것이다.
2월 18-21일 순차적으로 나가사키(長崎) 현 히라도(平戶), 구마모토(熊本) 현 아마쿠사(天草)·마츠시마(松島), 미야자키(宮崎) 현 다카치호(高千穗), 가고시마(鹿兒島) 현 기리시마(霧島)·묘켄(妙見) 코스가 개장되었다. 이제 규슈올레는 모두 8개 코스, 총 길이 106.4km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정취는 1500년대부터 히라도가 외국의 문물을 본토로 이어주는 창구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 때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는 그 당시 선교활동을 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기념성당이 있는데 성지순례를 하는 국, 내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637년, 이 고장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난다.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농민 수 만 명이 가담한 거대한 항쟁의 중심인물이 아마쿠사 시로라는 16세 소년이었다.
난은 도쿠가와 막부의 12만 대군에 의해 4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진압과정에서 막부에 협조한 단 한사람만을 남기고 모두 희생되었다고 한다. 문뜩 아름다운 제주가 간직하고 있는 아픈 역사가 떠올려졌다. 이래저래 규슈는 제주와 닮은 점이 많은 곳이다.


20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다카치오 올레는 일본개벽신화을 간직한 코스다. 일본 설화에 태양의 신으로 나오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숨었던 동굴이 있고 그 동굴은 신성한 곳이라고 해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그곳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계곡 쪽으로 걸어가면 다른 신들이 모여 태양신을 세상에 끌어내기 위해 논의를 했다는 동굴도 만나게 된다.

이 길에서는 빼곡하게 늘어선 대나무 숲과 운이 좋으면 친절하고 인심이 후한 녹차밭 주인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어느 녹차 농가 안마당을 가로 지르기 때문이다.

2차 규슈올레 마지막 개장코스는 가고시마 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기리시마 묘켄 올레다. 기리시마는 겨울철에도 평균기온이 10도를 웃도는 따듯한 곳이어서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휴양지로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코스도 온천마을 묘켄에서 시작해서 시오비타시 온천 료마 공원에서 끝난다.
기리시마 묘켄 올레는 일본 근대화의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되고 있는 사카모도 료마의 흔적이 짙게 깔린 곳이다. 곳곳에서 사카모도 료마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데 코스 대부분이 그가 산책을 했던 길이다.
올레길 종점에는 그의 신혼부부시절의 모습을 한 동상과 작은 기념관도 만나게 된다. 사카모도 료마 부부의 이 신혼여행이 기리시마를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자리매김 하게 했다.
사카모도 료마는 원래 하급무사에 불과한 신분이었지만 이후 상업활동과 정치적 활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다가 메이지 유신 직전에 교토의 한 여관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암살을 당한다. 당시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였다.


새봄의 문턱에서 만난 규슈는 제주를 닮은 점이 많았다. 경이로운 풍광도 그렇지만 개벽신화와 거친 역사의 아픔, 심지어 산지기의 구성진 민요가락 조차 너무나 제주를 닮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닮은 듯 닮지 않은 것도 없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다, 역사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쉬멍 걸으명 제주올레가 낳은 규슈 우정의 올레, 이 길을 걷는 사람만큼은 국적, 나이, 성 모든 차이를 떠나 서로 사랑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기를 기대해본다. 사랑과 평화가 우정의 올레가 추구하는 근본가치가 아니겠는가? <진희종 / 헤드라인제주 객원편집위원(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 감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