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가 만들어진 것이 46억 년전이라고 하고, 제주가 만들어진 것이 2백만 년전이라고 합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쪽지역에 있는 빌레못동굴에서 대륙에만 사는 황곰의 뼈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대륙의 한 부분으로, 그 곳의 곰들이 오갈 수 있었던 곳이었으나, 화산의 폭발과 지각 변동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섬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옛 선인들은 세발을 가진 큰 솥과 같은 형태의 섬에 험한 바닷길이 놓여 있어 배를 타고 오가는 길에 섬 사람중 십의 다섯, 여섯은 죽거나 표류하게 되므로, 남자보다 여자들이 많은 섬으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후덥지근한 기후와 심한 바람, 한두차례 불어오는 태풍의 피해는 농사일을 망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반복되는 기근의 고통은 제주 사람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할망당, 겹부조, 제사나눔 등 독특한 문화를 만들며 살아오도록 했습니다.
더군다나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떠나게 됨에 따라, 치안 유지와 공납(貢納), 군역(軍役)을 담당할 사람조차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출륙금지령이 제주에 발령되면서 쉽게 오갈 수 없는 섬이 되고 맙니다. 거주(居住)와 이주(移住)의 자유가 제한되는 시기가 이백년간 유지되면서 제주의 청정성과 고유성은 더욱 도타워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화산섬, 제주는 그래서 이국적 정취가 피어나는 신(神)들의 섬이면서, 편안함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새롭게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이 삶의 첫 여행지로 각광받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이처럼 따뜻하고, 신선하며 맑고 밝은 청정성의 가치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자연분야 3관왕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2002년 생울권 보존지역으로, 2007년 한라산, 거문오름, 성산일출봉을 중심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2010년에는 셰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2011년에는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까지 선정되어 그 시너지 효과는 앞으로 더욱 기대되고 있습니다.
제주가 갖는 청정성의 가치는 이처럼 세계적입니다. 더욱 아직 때 묻지 않은 바다는 이어도를 안은 채 태평양이란 대양(大洋)에 이어져 있고 지구의 70%에 이르는 바다는 무궁무진 자원의 보고이면서 아직 개척되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분야이겠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제주가 가진 고유성의 가치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척박한 삶의 터를 일구며 살아야 했던 선인들이 이웃과 더불어 만들어 놓은 오랜 전통의 삶의 양식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로한 노인이면 으레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더라도 별도의 불턱을 두고, 따로 장항을 간수하며 개별적으로 취사하는 등 따로 살아온 전통입니다.
핵가족이라고 이름하지 않더라도 개별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제주 할머니들의 전통이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었던 짧은 농번기를 감당하지 못할 때 우리 제주에서는 일 손을 늘려 집중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하였던 수눌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가족중심의 농경이었으나 가족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받은 공력을 다시 갚을 것을 전제로 검질 매기, 보리 베기, 거름 나르기 등의 농경을 함께 하였던 전통이었습니다.
혼례 및 상례 등 평생에 한번 치루는 큰일에 사람된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가 필요하였습니다. 돼지고기, 쌀, 생선, 빙떡은 물론 갖은 제상차림에 인력은 물론, 많은 비용이 들기 마련이었습니다.
이 때 내외, 가족 모두가 부조를 받아 보탬으로써 큰일이 가능하도록 하였던 전통이었습니다. 받은 것이면 반드시 갚는 것이 사람된 도리였기에 제주의 괸당문화의 기본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혈연의 인연을 맺은 자식으로 봉사(奉祀)의 책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4대 봉사에 명절 제사까지 1년에만 10번 이상의 제사를 치루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제주에서는 장형은 물론, 지차들까지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기제사, 명절제사 나누어 치룸으로써 봉사의 의무를 나누어 행하는 제사나눔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주만의 고유성의 가치는 지연(地緣)이라는 인연 속에서 행해졌던 농경사회라는 시간 체계를 근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월을 만들듯이 문화는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벌초방학을 실시하면서까지 가족 모두가 모여 벌초를 하였던 제주만의 전통은 이제 어제의 이야기가 되고 말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제각각 직장을 찾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외딴 섬, 제주에서 우리 선인들이 만들어온 고유성의 전통을 가족 모두가 모이는 이 추석에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김동섭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