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3편)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3편) 찍과 이녁만씩해녀들은 바다 바닥에 있는 해초를 베어낸 후, 이를 큰 그물을 이용해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는 해초로 가득 찬 무거운 그물이 육지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말린 해초는 불에 태워지고, 그 재는 요오드 추출을 위해 팔린다. -발터 스퇴츠너해녀들이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감태다. 감태를 태워 ‘감태재’를 팔았다. 감태를 태울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감태 연기가 매우 독해서 주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제주 해안가에 ‘감태막’이 많았다. 감태 수집상들이 ‘감태막’에서 수집한 ‘감태재’를 일본·국방성에 납품 문화 | 고승욱 | 2025-06-27 08:50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2편)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2편) 거북이 등짝 사이에 꽃게 한 마리마치 세속 이전의 거대한 거북 무리가 잠든 듯 평평한 아치형 지붕이 산 사이에 나란히 놓여 있다. - 발터 스퇴츠너스퇴츠너는 강연 때마다 한반도의 초가지붕을 거론하며 감탄했다. 제주 체류 때도 제주의 초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스퇴트너의 사진 속에 초가지붕 사이로 기와가 보인다. 마치 거북이 등짝 사이에 꽃게 한 마리가 있는 듯하다. 대문을 기와로 올렸으니 부잣집이라 해야겠다.(1904년 기록인 『삼군호구가간총책』에 의하면 당시 제주도 가호 총 51,355호 중 기와집은 237호로 전체의 약 5% 문화 | 고승욱 | 2025-06-25 08:45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1편) 발터 스퇴츠너의 글과 사진으로 본 제주 자연과 문화 (1편) 연재를 시작하며1929년 독일인 스퇴츠너가 제주에 두 달간 체류하며 수집한 제주유물이 97년 만에 제주로 왔다. 스퇴츠너의 제주 유물이 제주에 오기까지 많은 우연과 곡절이 있었다. 이를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29년 당시 스퇴츠너의 제주 입도 자체가 우연이었다. 스퇴츠너는 만주 답사를 마친 후 연이어 조선을 답사하려 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비협조적이었고, 일체의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 스퇴츠너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제주였다. 그 당시 제주는 한반도에 비해 일제의 감시가 비교적 느슨했던 모양이다.스퇴츠너는 문화 | 고승욱 | 2025-06-23 08:45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