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듯 파묻힌 당신은 누구십니까?
상태바
버려지듯 파묻힌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증언] 박두선-강조행-양상준 3명이 전하는 '4.3의 기억'
"비행장 철조망에 있었는데 갑자기 죽었다는 거에요"

올해 나이 88세인 박두선 할머니(제주시 오라동 출신).

그에게 있어 4.3은 잊혀지지 않는 악몽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2005년 귀국한 그는 지금도 4.3의 기억 때문에 공항가는 버스를 타기 싫다고 한다. 당시 집단학살과 매장이 있었던 한맺힌 기억 때문이다.

그의 4.3 기억은 두갈래로 이어졌다. 하나는 남편과 관련된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시아주버니에 대한 기억이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박두선 할머니. <헤드라인제주>
4.3사건이 터진 후 얼마없어 그의 집에 경찰이 들이 닥쳤다. 바깥채에 살던 H씨와 관련해서다. 방안에 있던 그의 남편이 문을 열어보니 도망가려는 것으로 오인한 경찰들이 그를 추궁했다.

얼떨결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고 했지만 경찰은 못믿겠다는 듯 화장실에 데려가서는 지켜섰다. 두려움에 볼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떨고 있자, 경찰은 남편을 잡아갔다. 인근에 거주하던 사람들도 붙잡혀갔다.

남편은 사흘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은 채 몽둥이로 매질이 가해졌다고 했다. 풀려난 후 그의 가족은 일본으로 갔다.

"이제 여기 무서워서 못 살고 일본이나 가보자고 해서 일본으로 갔어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등뼈가 튀어나왔다고 해서 수술을 받고, 그후로 13년이나 탕약을 다려서 먹었어요."

#"비행장 끌려가기 전에 절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죠"

그의 시아주버니에 대한 얘기도 이어졌다. 최근 제주공항 유해발굴사업에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다.

"경찰에서 잡아갔다고 하는데, 빨래를 할 옷을 보내왔는데 속옷에 글귀가 있었죠. '배고팡 죽어지겠습니다.'라고 써져 있어서 밥을 해서 벤또(도시락)을 여러번 보냈어요."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 <헤드라인제주>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박두선 할머니. <헤드라인제주>
붙잡혀간지 얼마 없어 비행장(현 제주공항)에 굴을 판다는 말이 들려왔다. 시동생을 비롯해 육지 형무소에서 갇혔던 사람들을 처형하기 위해 땅을 판다는 것이었다.

비행장으로 끌고가기 전에 제주시 관덕정 앞 마당에 사람들을 세워놓았다. 아기를 업고 관덕정 앞으로 간 그는 그곳에 있는 차를 세어보니 17대나 18대 쯤 되었다고 한다.

"막 울면서 보는데, 사람들이 비슷비슷해 시아주버니를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날 알아본 시아주버니가 손을 흔들어줘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로부터 며칠 후인지 모두 비행장에 잡아가서 죽였어요."

그 일을 겪고 난 후 박 할머니는 공항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싫다고 했다. 버스를 타면, 학살이 이뤄진 그 쪽편으로 자꾸 눈이 가기 때문이라고.

#"습격에 가담했다며 매질에 전기고문을 해대는데..."

올해 88세인 강조행 할아버지(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4.3 당시 그는 지서에서 보초를 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서가 습격당하고, 구엄리가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이 그를 포함해 가족들, 주민 30여명을 포승줄에 묶어 신엄지서로 끌고 갔다.

아파 누워있는 동생을 끌고가려는 것을 막다가 지서로 함께 끌려가게 된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데,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해 분류가 이뤄졌다.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 끌어내고, 끄덕이지 않으면 그냥 앉아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그는 1구서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게 됐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도열해서 곤봉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습격에 가담했다고 자백하라고 전기고문까지 하며 취조를 해댔다.

"손가락에 전기를 끼우는 것 까지만 알고, 그 다음은 기절해서 모르는데, 나중에 동네사람이 '저 사람 죽었다 살아났어'라고 말해줬어요."

15일간 취조를 받은 그는 조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압력에 못이겨 도장을 찍음으로써 신엄지서 습격에 가담한 것이 돼 버렸다. 물론 그는 그 조서의 내용도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고, 1구서에서 6개월을 있은 후 광주로 이송됐다. 다행히 그해 12월 풀려났으나, 그는 마음의 상처는 컸다.

1949년 제주로 내려온 그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스무살이었던 남동생과 18세였던 여동생이 죽었다는 것이다. 남동생은 최근 비행장 유해발굴사업에서 유해가 확인됐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 <헤드라인제주>
#"갑자기 죽었다며 면회 안된다는 거에요"

올해 74세인 양상준 할아버지(제주시 노형동 월랑마을).

4.3당시 그는 월랑마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8남매인데, 4.3으로 둘째형 내외와 딸, 작은형이 죽었다고 했다. 큰 아버지와 사촌형도 목숨을 잃었다.

둘째형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비행장 철조망에 갇혀있는 그에게 모친이 밥을 해서 갖다줬다고 한다.

"하루는 어머니가 형님 신발을 보니까 다 헐어서 떨어졌기에 고무신 한켤레를 사고 면회를 갔는데 안시켜주더라는 거에요. 면회를 시켜달라고 해도 '죽었으니까 돌아가라'고 하면서. '아니, 아시날(전날)까지 밥을 들였는데 어떻게 죽었느냐?'고 따져묻자 매질까지 한 모양이에요. 원래 면회가면 오전이면 돌아오는데 그날은 어둑해서도 안오시기에 어머니가 매를 맞아서 걷지를 못하는 거에요."

둘째형은 이번에 비행장 유해발굴과정에서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형님이 나왔다는 말에(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이 이뤄졌다는 의미)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냥 믿기만 합시다. 화장시킨다고 하니 그저 남들과 같이만 하자는 그런 생각만 했어요."

작은형은 인천형무소에 잡혀가서 죽었다는 통지가 왔었다고 했다.

"8남매이던 형제가 저와 누이동생 둘만 남으면서 식구가 조촐해졌죠."

4.3당시를 회고하는 이들의 얘기는 30일 오후 2시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마련된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에서 전해졌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소장 김창후)에서 마련한 4.3증언은 3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개회식에 앞서 4.3희생자 유해발굴사업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이날 증언에 나선 3명 모두 공항 유해발굴사업과 관련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8번째'인 <통곡의 세월-62년만의 재회>에서 4.3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는 민중가수 최상돈. <헤드라인제주>

민중가수 최상돈이 4.3추모 노래로 4.3유족들의 아픔을 달랬다.

김경훈 시인과 허영선 시인은 시낭송으로 4.3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뼈와 뼈끼리 한데 엉겨붙은 채
좁은 구덩이에 못 견디게 웅크린 채
버려지듯 파묻힌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이 제주섬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 민족이 이리 참담할 수는 없다고
이 처참한 야만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고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의 파편처럼
매몰된 진실의 항변은 비행기 굉음에 묻힌 채
60여년 부릅뜬 눈으로 지켜온 세월

아, 이제 세상의 빛에 온전히 노출된
당신의 좋은 신체 좋은 얼굴 좋은 이름
그 생생한 유전자를 찾아 세포 하나 하나 되살리려니

이제 고이 일어서시라
참담한 역사의 참혹한 야만을 딛고
이제 서천꽃밭 생명꽃으로 부디 부활하시라

- 시인 김경훈의 <서천꽃밭 생명꽃으로 부활하시라>.


4.3 당시 모습. &lt;사진=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헤드라인제주&gt;
4.3 당시 모습. <사진=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헤드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영령의 명복을 빌며 2011-03-30 22:45:51 | 49.***.***.148
마지막 부분의 김경훈 시인의 시가 가슴을 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