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빵 투쟁'에 '단식투쟁'..."앞으론 국제사회 해외 원정투쟁"
수년째 제주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몸부림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양윤모씨(55).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는 그의 거처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가에서 세워진 허름한 천막. 이 집의 이름은 '중덕사(寺)'.
하지만 그의 두번의 구속, 그리고 출소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단식투쟁' 때문에 아직 중덕사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치열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11일로 67일째.
<헤드라인제주> 취재팀이 11일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해군기지 반대 단식투쟁 67일째라고 큼직하게 쓰여진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취재진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는 양 평론가.
몸은 많이 야위었지만 해군기지 얘기만 나오면 단호한 어조로 분명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제중심'인데, 일단 하나를 끝장을 봐야죠"
그에게 물었다. 서울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어떻게 해서 제주에 내려와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과제중심의 삶'이란 말로 대신했다. 오래전부터 가져온 자신의 삶의 방식은 과제중심이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게 들린다.
어려서부터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그 독립운동가들의 삶 속에서 과제중심의 방식을 채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과제중심의 활동은 오래전서부터 이어져 왔다. 5공 말기 직선제 대통령제를 쟁취하기 위한 호헌철폐 시위가 시작될 무렵, 그는 홍기선 감독 등과 함께 호헌철폐 운동에 나섰다. 영화인들이 서명한 호헌철폐 입장을 들고 직접 신문사를 찾아기도 했다. 이 당시 그의 '과제'는 호헌철폐였던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시국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니까, 한 신문사 데스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영화인들도 이런 거 하냐'고. 다음날 신문 보니까 정말 '영화인들도-'라는 말이 있었죠."
과제중심의 활동은 성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미FTA만 하더라도 나중에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재협상을 했는데, 재협상 보다도 노무현 정부시절의 협상결과가 나았다. 이건 싸워서 이겨낸 것이다. 스크린쿼터 문제에 있어서도 결국 축소되기는 했지만 미국이 요구한 것보다는 유리하게 얻어냈다. 이것도 저항해서 얻어낸 것이다.
# 제주로의 '과제' 이동..."제주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했다"
그럼,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어쩌면 과제중심의 생활방식이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늦게 발동시켰던 것 같았다.
"스크린쿼터, 한미FTA 하면서 화순 해군기지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지는 됐는데,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다. 서울에서 누가 고향의 문제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섣불리 대답하기가 그랬다."
그러다가 화순이 아닌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강정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양윤모의 '과제'는 강정으로 이동됐다. 관심과 시선이 강정으로 옮겨진 것이다.
"하지만 강정에 대해서 잘 모르겠더라구요. 해군기지 계획도 마찬가지구요. 인터넷에 들어가 강정이나 해군기지 정보를 찾았는데 정보가 너무 빈약했어요. 매일 신문을 보면서 저 나름대로 기사도 꼼꼼하게 읽고 했지만, 부족한게 많았죠."
고향 제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제주에 내려와 '직접 인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제주에 내려왔죠. 정말 제대로 강정에 대해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일단 내려왔어요. 내려와서 노동현장의 공사판에서도 하루 5-7만원 받으면서 일도 했구요, 선과장에서도 일을 했어요. 길은 소위 큰길, 관광코스와 같이 많이 다니는 길 보다는 올레길이나 어촌, 산간벽지 같은데 많이 다녔어요. 그 속에서 많은 계층의 사람들도 만나면서 얘기를 나눴구요. 소위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 만나서 현실 얘기도 많이 했어요."
#"제주도식 전관예우 목격하면서 정말 화가 났죠"
이 때 그는 큰 깨달음이 있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제주에 내려오면 왕자 대접을 받고, 권력을 부리고 자기 이익 확대를 위해 현안에 침묵하더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런 것은 소위 제주도식 전관예우라고 할 수 있죠. 대접을 받으면서 현안에는 침묵하고, 제주도 망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많이 분노했죠. 이것은 내 고향 삶의 공동체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제주가 정체성 가진 비전을 세우는데 바로 이런 것이 장애가 될 것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의분(義憤), 즉 불의에 대한 분노가 부족함도 느꼈다고 했다.
#강정주민과의 첫 만남...기자회견에서 맞본 '좌절감'
이러한 일련의 시간과 과정 속에서 고향을 보는 현실인식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는 됐다고 판단된 시점에 그는 강정마을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처음 해본 것이 2008년 7박8일간 이뤄진 강정주민과의 도보순례 참가다.
이 도보순례 참가를 계기로 해 그의 강정마을 생활은 시작됐다.
그리고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영화인들이 해군기지 반대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공무원들과 마찰도 있었다.
양 평론가는 이 때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인들이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공무원들이 방해를 했는데, 그때 저는 제주가 비판적 의견이 봉쇄 당하는 사회라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형평성 내지 원칙의 문제도 있었지만, 소수의 의견, 특히 반대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편협함이 있는 공무원들이구나 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죠. 특별자치도 도지사라는 것은 막강한데, 비판세력의 문제제기는 불가능했죠. 이래서는 도지사 견제 어렵겠구나 생각을 했죠."
그 후,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노숙을 할 때면 그도 함께 노숙을 했다. 영화인들과 함께 1박2일 혹은 2박3일 일정으로 강정주민들과 얘기도 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화강의도 했다.
#움막 생활 끝에 2009년 '중덕사' 탄생
그리고 2009년에는 도지사 주민소환운동에 함께 나섰다. 소환운동 당시에도 강정주민들의 2차 도보순례가 있었다.
이 도보순례를 마치면서 지금의 '중덕사(寺)'가 세워졌다. 처음부터 지금의 천막이 설치된 것은 아니다. 중덕 해안가에서 바위틈사이에 차광막을 치고 움막처럼 만들어 지냈다.
"정말 보잘 것 없이 세워진 움막에서 생활했는데, 2차 도보순례 끝나고 육지부 회의가 있어 열흘 정도 있다가 와보니 '중덕사'가 만들어졌더라구요. 강정 주민들이 '양 선생 거처 마련한 것'이라면서. 제가 직접 한 것은 거의 없고 모두 주민들이 해준 것이죠."
천막집의 이름은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지키는 중덕사'다. 천막집 입구에 내걸린 이 이름의 팻말 또한 강정주민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중덕사' 천막생활은 시작됐다.



'나홀로 천막'에 생활하면서 그는 수없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유는 단 하나,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4월12일 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를 체포했다. 그리고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중 재물손괴 혐의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사업 부지 인근에 세워진 해군 홍보입간판 등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가 CCTV에 녹화돼 해군이 고발조치한데 따른 것이다.
또 그해 3월20일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해군기지 예정지를 방문할 때 김 장관이 타고 있는 승용차 앞을 가로막은 일을 두고는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벌금 190만원을 받았다.
비록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정당성 논리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의 대응은 '벌금 납부 거부'로 이어졌다.
벌금납부를 거부한 일은 또다른 빌미로 이어졌다.
그러나 구속수감되면서도 그는 벌금납부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차라리 노역을 살겠다며 스스로 교도소 수감을 자처했다. 구속된 후 시민사회단체에서 모금을 통해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수차례 찾아가 벌금을 납부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수감됐다는 소식에 가장 안타까워하고 걱정했던 사람들이 바로 강정마을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하며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벌금을 납부한 후에야 그는 풀려날 수 있었다. 출감 후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강정해안의 중덕사로 돌아갔다. 그 때가 혹한의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 중순께.
그에게 다시 물었다. 당시 왜 그토록 벌금납부를 거부하며 처절한 몸부림을 쳤었는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해군에 1차적 문제가 있었다. 원인제공은 해군이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국책사업을 내세워서 해군기지 한다면 입지의 주인이 되는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사업설명회나 공청회 등을 하면서 그에 따르는 사업들이나 마을발전 계획 입안해서 논의와 협의도 하고, 민주적 절차인 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즉, 주민들에게 의사표현의 기회를 줘야 하는데, 이것이 헌법 1조의 '민주공화국'의 의미인데, 그런 민주적 원칙이 배제됐다."
그는 "강정 해군기지 문제는 한마디로 법적 정당성과 절차적 과정의 민주성, 도덕성을 상실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저의 주장이다. 저 스스로도 납득이 안되는데, 벌금을 낸다는 것은 소신과의 타협일 수밖에 없다."
# 두번째 구속..."몸빵 투쟁하다 구속됐는데, 멈출 수 없잖아요?"
이 벌금납부 거부에 따른 구속사태에 이어, 그의 두번째 구속수감이 이뤄진 지난 4월6일.
이날 역시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공사차량의 진입을 가로막다 충돌이 발생했다. 드러눕고, 크레인 차량 밑에 들어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모습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잘 알려진 바 있다.
이 처절한 몸부림을 그는 '몸빵 투쟁'이라 표현했다.
"삶의 원칙인 초지일관을 좋아한다. 투쟁방식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군이 작업 공정률을 높이기 위해 밀어붙이는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해서라도 막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기계 위에 드러눕고, 크레인 밑에 들어가고 했다. 간절한 몸부림 투쟁, '몸빵 투쟁'을 했는데 구속이 된 것이다."
이 때 경찰에 연행되면서 구속을 예상한 그는 '단식투쟁'을 결심했다고 한다.
"몸빵투쟁 해서 구속됐는데, 멈출수 없잖아요? 그래서 단식투쟁을 결심했죠. 그 투쟁의 피가 교도소로 연결되었는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간디 선생의 정신을 교도소 단식투쟁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죠."
교도소에서 계속된 단식투쟁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물었다.
"저 하나 힘든 것은 다 초월하며 이겨낼 수 있는데, 밖의 상황, 즉 지금 강정의 상황이 정말 걱정됐고 궁금했다. 그것이 마음의 병이 생겼다. 면회 오시는 분에게 마다 강정상황을 물어봤다. 어떤 분들은 '선생님 덕분에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키고자 했으나 많이 답답했다. 직접 보고 느낄 수 없으니까.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정에 집중해달라고만 부탁했다."
지금까지 그가 경찰에 고소고발 당한 것만 9건이다. 단일 사안으로 고소건수가 많은 것도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아마 단일사안을 갖고 9건의 고발을 당했다면 기네스북에 오를 일 아닌가요? 한번 해보자. 끝까지 해보자. 단일 사건으로 몇건이나 더 가는지. 그렇게 간다면 이 싸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해외 투쟁' 계획..."유네스코 본부 앞에서 해군기지 문제제기할 것"
앞으로의 투쟁계획에 대해 물었다.
내년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와 연계해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해외 투쟁'을 계획 중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 앞에서 1인시위를 가져나가겠다는 생각이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 앞바다의 범섬 등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인데, 이 생물권보전지역 주변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또 WCC에 참가하는 국제 환경단체 관계자들에게 해군기지에 대한 문제점을 알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이 길어졌다. 구체적인 방법과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고 피력했다.
"제가 직접 해외 투쟁에 나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1인 시위팀 두팀 정도 꾸려서 나눠서 전개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 WCC를 저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WCC에 했던 왜곡된 정보를 폭로하고, 국제 서약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례를 알려야 한다. 그걸 못하면 제주는 국제적 공신력에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국제 환경올림픽이라 불리우는 WCC를 앞둔 투쟁이기에 그는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WCC 앞둔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는) 고향을 해코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의 아픔, 우리 아픔을 감수하고 우리 내부의 암적인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 도려내지 않으면 미래비전과 도덕적 당당함을 가질 수 없다. 도덕적으로 당당해야 한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해군기지 철회'...이건 타협 있을 수 없어"
현재 정치권과 많은 사회단체에서 '공사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저마다의 시각이 다를 수 있고 의견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일시 중단'이 아니라 '해군기지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기지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고, 강정마을의 평화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떤 주장과도 중간자적 혹은 타협점이 있을 수 없다."
"해군기지가 아닌 지금 이대로의 제주로 가야 미국과 중국의 균형과 안정, 평화를 조율할 수 있다"며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그렇게 선언되기를 기대한다"는 양윤모씨.
그의 삶에 있어 현재 전개되고 있는 해군기지 문제는 당면한 '과제'다. 그의 지론인 '과제중심'의 삶의 방식처럼, 끊임없는 저항과 몸부림으로 표출되는 '과제'는 어떻게 풀어낼까. <헤드라인제주>

이 일을 끝장내야만 다른 과제로의 이동을 할 수 있는 양선생.
빨리 이 일이 풀리길 기대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