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천경합...'총선직행' 고심...결국 함께 갈까
4.11 총선에서 서귀포시선거구의 민주통합당의 고창후 예비후보(48. 전 서귀포시장)와 문대림 예비후보(47. 전 제주도의회 의장).
민주통합당이 24일 서귀포시선거구를 국민경선 없이 현역인 김재윤 예비후보의 단수공천 지역구로 결정해 발표하자, 두 후보는 큰 충격 속에서 민주당 탈당을 감안한 '심각한 고민' 중에 있다.
한차례 긴급회동에서 "서로 연대하자"는 큰 틀의 얘기를 나눈 후, 두 후보진영에서는 후보단일화를 통한 무소속 출마를 염두에 두며 물밑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두명 모두 군사독재정권 말기인 1986년에 제주대에서 학생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둘다 법학과 출신으로, 고 후보가 문 후보 보다 한살 위 선배다.
대학시절 문 후보는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공개된 조직'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면, 고 후보는 비공개 학습소모임인 소위 '언더그룹'에서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문 후보는 당시 총학보생회장인 박희수 현 제주도의회 의원과 더불어 4.3분향소 설치 및 학내 및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섰다.
고 후보도 같은해 '장기집권 음모 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연행됐는데, 그 해 12월 민정당사 화염병 투척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학내에서는 제명됐다.
대학시절에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이후에는 조금씩 방향이 달라진다.
문 후보는 졸업 후 법학과 조교로 일하다가 곧바로 대중정치 속으로 뛰어든다. 민주당 서귀포시지구당 정책실장을 맡아 활동하다, 이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수년간 일했다.
그리고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정읍 지역구에서 출마해 도의원에 첫 당선되면서 얼굴을 드러냈다.
투옥되면서 대학에서 제명처분을 받은 고 후보는 복학의 길이 열리면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1988년 졸업했다. 그리고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에 잠시 투신했다가 사법시험 준비에 전념해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 후보는 대중정치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반면, 고 후보는 판사생활을 한 후 제주에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둘은 선후배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치적 '라이벌' 관계로의 진전을 가져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문 후보는 대정읍 선거구에서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올리며 재선에 성공한 뒤 제9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다. 첫 '40대 젊은 의장'의 탄생이었다.
고 후보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우근민 후보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민선 5기 도정 출범 후 첫 서귀포시장에 임명됐다. 그 역시 첫 '40대 젊은 시장'의 탄생이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젊은 의장과 젊은 시장으로 주목받은 두 사람은 이번 총선에서 '라이벌'로 등장하게 됐다.
처음엔 문 후보는 민주통합당 공천경쟁을 통해, 고 후보는 무소속을 통해 선거전에 나설 것처럼 보였으나, 고 후보가 지난해 말 시장직을 사퇴하면서 민주당에 입당, 이번에 나란히 공천신청을 하게 됐던 것이다.
민주당이 서귀포시를 국민경선 지역구로 결정했다면 '486세대' 라이벌의 한판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민주당 공심위가 단수공천 지역구로 결정하면서 국민경선은 무산됐다.
그리고, 지금 두 후보는 민주당 공천심사에 반발하며 '총선 직행' 여부를 고심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 과정에서 다시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시장직과 의장직을 사퇴하면서 총선에 뛰어든 486 라이벌.
긴박한 정치상황 속에서, 이 둘은 결국엔 같은 길을 갈까, 아니면 각각의 길로 헤어져 한판승부를 벌일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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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