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 함께할 때 빛나는 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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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보다 함께할 때 빛나는 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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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대관 / 제주도 도시건설국 도로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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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관 / 제주도 도시건설국 도로관리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후기 목민심서, 경세유표 및 흠흠심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며 유배 중에도 제자를 양성학 교육자로, 수원 화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를 발명한 과학자로, 형조참의 등을 지낸 조선의 다재다능하고 청렴 강직한 관료이자 선비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과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였고 신유사옥 때 유배되어 18년간의 유배 기간 동안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실학을 집대성 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성리학파 중 남인(南人)으로 유성룡과 이황의 사상을 계승한 학자라 볼 수 있다.

다산이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23세, 1784) 쓴 시 남과탄(南瓜嘆)에 그와 그의 부인 홍혜완(1761~1838)의 청렴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성균관에서 장마로 10일 만에 집에 와 보니 어린 여종이 부인에게 회초리를 맞고 있었다. 당시 부인의 나이는 24세였고 장남이 태어나 아직 돌이 안 된 시기였다.

집이 원래 가난 하였고 식량이 떨어지자 어린 여종이 굶고 있는 주인마님과 젖먹이 아기에게 밥을 지어 주고자 이웃집 호박을 훔쳐다가 죽을 끊여 드렸으나 부인은 먹지 않고 오히려 호박을 도둑질 하였다고 여종에게 회초리를 쳤다. 다산은 훔친 호박으로 끊인 죽을 함께 먹고 호박주인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이니 여종 아이를 꾸짖지 말라고 했다.

이 시의 일부에서 『破書萬卷妻何飽』만 권 서적을 읽었으나 어찌 아내가 배부르리『有田二頃婢乃潔』밭 두어 이랑 있었던들 여종은 깨끗했을 텐데 라고 한탄했는데 가난한 청년 다산의 고뇌와 지적 갈등과 정직함이 잘 나타나 있다.

일만 권의 책을 독파했으나 그것으로는 아내의 배고픔을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며 밭이 두어 이랑만 있었어도 어린 여종이 도둑질을 하지 않아 청렴했을 것이라며 괴로워했다.

이 시에서 다산의 부인 홍혜완의 올바른 성품도 읽을 수 있는데 이런 부인을 두었기에 다산은 탐욕스럽고 부패한 탐관오리가 득실대던 조선후기에 성리학적 근본 가치에 충실한 청렴한 관리가 될 수 있었고, 18년의 혹독한 유배를 겪으면서도 그 생활을 그만 두고 복직 할 수 있는 요청을 지인들 혹은 권력자들에게 할 수 있었으나 그런 부탁도 하지 않고 오직 쓰러져 가고 잘못되어 가는 조선을 살리고자 500 여권을 저술하여 민족의 올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줬다. <고대관 / 제주도 도시건설국 도로관리과>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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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7-11 15:01:16 | 175.***.***.149
과학의 오류와 종교의 모순을 바로잡으면서 우주를 새롭게 해석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출간됐다. 그런데 과학자와 신학자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저명인사들에게 이 책에 대한 의견을 청구했으나 모두 침묵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선생님의 글은 제가 그 가치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진솔한 답장을 보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이 책에 반론하면 5천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책표지에 공시했으나 반론이 없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크기, 장소, 형태와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의 물리학이론은 국소적인 상황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