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구내 포구에는 11월의 찬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다 건너 섬은 웅크린 채 엎드려있다. 머플러로 목을 감싸고 펄럭이는 옷깃을 여미며 승선장으로 향한다. 포장마차에서 굽는 구수한 오징어 냄새가 바람결에 흩날려 오감을 자극한다. 이곳에서 많이 난다는 화살오징어일까. 속절없이 오그라드는 오징어를 매정하게 찢으며 배에 오른다. 바닷바람은 머리칼을 날리고 울쑥불쑥 뱃전을 때리는 파도는 햇살에 투명하다. 어느새 배는 섬에 기대어 거칠고 검디검은 차귀도 발등 위에 사람들을 부려놓는다.
사는 이 없는 섬, 차귀도는 오롯이 억새들의 둥지요 삶터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섬 안으로 들어선다. 납작 엎드린 키 작은 나무 외에는 온통 억새밭이다. 때마침 만발한 억새꽃으로 구릉에는 은물결이 여울진다. 흔들리는 억새의 밑동을 지그시 바라본다. 빽빽이 뭉쳐, 뿌리 뻗으며 잘라도 뽑아내도 다시 싹을 틔우고야 마는 그 강인함은 척박한 환경을 마주해 이겨내고 순응하며 살아온 제주 사람을 닮았다. 억새 무리가 한결 잦아든 살랑바람에 나긋나긋 사분댄다. 오르락내리락 걷는 오솔길은 어느새 순정한 세계로 내 영혼을 이끈다.
언덕에 앉아본다. 억새꽃 사이로 햇살이 ‘펠롱펠롱’ 엇비친다. 늦가을의 아련한 정취는 옛 추억을 데려온다. 산과 들로 쏘다니며 스스로 ‘해달별’이라 부르던 친구 셋, 무등산 중봉 너르디너른 억새밭을 내달리던 소녀들이 내게로 오고 있다.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언뜻 떠오른다. 다정한 친구였던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도란거리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에 닿았다. 세찬 바람에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 있기가 힘들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는 억새는 견딜만했다. “와, 시원하다. 사방 경치가 한눈에 보이니 얼마나 좋니. 난 여기서 살래.” 억새의 말에 갈대와 달뿌리풀은 “난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더 낮은 곳으로 갈래.”하고는 산 아래로 갔다. 얼마쯤 가다 개울을 만났다. 마침, 둥근 보름달이 떠올라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이 “우와 좋다. 난 여기서 달그림자를 보면서 살 거야.” 하며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이리저리 둘러보니 둘이 살기엔 너무 좁아 보여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길은 바다에 맞닿아 더는 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서 살게 되었단다.

마치 ‘해달별’ 이야기 같다. 천방지축 뛰놀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영광으로, 울산으로, 부산으로 각자 배우자를 따라 삶터를 일구며 살았다. 그러다가 ‘해’는 남편이 서울 본사로, ‘별’의 남편은 바다를 가르는 선장에서 서울로, 애초에 서울에 살던 나와 모두 합체하여 다시 제2의 부흥기를 누렸다. 조조 영화를 보고 재밌는 테이프가 있으면 모여 같이 보며 낄낄거렸다. 아이를 둘러업고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여기저기 답사 여행도 다녔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한 친구는 억새가 되어 어릴 적 살던 구릉에 터 잡았고 또 한 친구는 바닷가 갈대처럼 먼 곳으로 떠나 바닷가에 산다. 나는 달뿌리풀처럼 개울가에 남아 가끔 달그림자를 바라본다.
바람결에 허리를 굽힌 풀숲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저 멀리 수월봉과 한라산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언덕 위에 오도마니 선 등대가 보인다. 주민들이 만들면서 직접 자재를 나르느라 ‘볼락볼락’ 힘들게 숨을 쉬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볼래기 동산’의 등대이다. 그 하얀 등대는 지금도 깜박, 깜박, 불을 밝히느라 가쁜 숨을 쉰다.
이 섬에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님의 흔적이 있다.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작은 목선을 타고 돌아오다 폭풍을 만났다. 흘러 흘러 도착한 곳이 이곳으로, 건너편 용수리 해안에는 제주 표착을 기리는 기념관이 서 있다, 신부님이 지친 몸으로 내려서던 그때는, 아마 등대 불빛 한 점 없는 암흑의 바다였으리라.
출렁이는 억새를 가르며 걸으니 구름 위에 올라탄 듯 자유롭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깎아지른 천혜의 절벽이 주는 대자연의 읊조림을 한 편의 수필로 안아 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너울너울 은빛 물결에 안겨 메마른 감성에 불을 지피며 다시 추억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친구 셋 중 희복이는 해, 나는 달, 미령이는 별이다. 열댓 살 소녀가 어찌 그런 이름을 생각해 냈는지 신통해 우리끼리 웃곤 한다. 동창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트리오로 부러움 반, 질투 반, 입에 오르내린다. 결혼해서는 하나같이 낄낄 웃어넘기는, 남편들의 묘한 반응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일월성’, 신비한 우주를 지키는 여인네들이라며 의기양양하다.
‘해’는 요즘 말로 이름과 일치율 100이다. 열정이 넘치고 부지런한 행동파에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태양처럼 베풀기 좋아하는 친구다. 몰래 귀띔하자면 패션에 관심 많은 수다왕이어서 좀 소란스럽긴 하다. ‘별’은 차분한 요조숙녀랄까, 여행과 노래를 좋아하고 살림 솜씨도 야무진 늘 변함없는 친구다. 멀리 미국에서 별처럼 빛을 내며 산다. ‘별’에 대해서도 굳이 풀자면 살짝 새초롬한 깍쟁이라는 것. 보름달, 초승달 할 것 없이 달을 좋아하는 나는 ‘달’이다. 둘의 중간쯤이랄까. 나는 뭐 특이점도 별로 없어 친구에게 묻어가는 순둥이다. 비밀스레 일러바칠 게 있긴 있지만 굳이 스스로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능선을 넘고 골을 건너며 차귀도의 숨결을 듣는다. 해달별 생각에 무심히 바라보는 은물결은 외로이 선 섬을 위로하듯 서걱거린다. 그렇게 차귀도는 억새들의 둥지가 되었고 그 은물결에 바람조차 은빛이다. 이별을 말하며 어쩌면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만추는 억새들의 몸짓에 고요히 이울어 간다.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가을 속에 나는 있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일월성 세분들의 변함없는 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우정과 건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