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어느 날 거리로 나서면 바람이 불고, 길이 얼고, 머리카락이 날리는 일들은 사소하다. 사소하고, 당연하게 춥다. 추위를 막으려 귀마개처럼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들으면 풍경은 느닷없이 실시간 동영상처럼 변환된다. 이 변환에는 의지가 덧붙어 있다. 이런 의지를 작동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수만큼 수천억 개의 영상이 재생될 터였다. 그것들이 투명한 막처럼 켜켜이 쌓이는 장면을 상상한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스케일이 펼쳐진다. 출퇴근길이라는 거의 정해진 목록들, 거의 비슷한 풍경에서, 거의 늘 듣던 음악들로 채운 이 짧은 여정에서—그런데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내게만 보이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가끔은 재생된 수천억의 장면들을 투과하며 걷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단숨에 부서지며 사라지는 찰나들은 입안에서 톡톡 튀는 팝핑 캔디처럼, 공간을 무한대로 펼쳐내며 터져 나간다. 심장이 두근대는 시간이 순식간에 영원처럼 늘어진다. 걸어가는 길은 마치 은하수가 펼쳐지듯 빛나며 뻗어 나간다. 별을 밟으면 발아래로 빛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내 안으로 흡수되어 나까지 빛날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우주는 다시 바닷속 같고, 나는 무수히 유영하는 해파리 중 하나 같다. 흔히 해파리를 의지가 약하고 결단력 없는 사람에 비유한다지만, 약하디약한 나라는 사람에게는 이렇게든 저렇게든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어 잠시 웃는다. 웃다 보면 어린왕자의 도르래가 떠오른다. 아, 별들의 웃음이라니—생각은 자꾸만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간다.
하긴 겨울은 그 어느 계절보다 별을 보기 좋은 시간이 아니냐고, 고기압이라 해도 여름과 겨울은 다르다며, 마치 벼려진 검처럼 빛나는 것이 겨울의 별 아니냐고 혼자 중얼거린다. 저 별들과 은하들에서도 지금 내가 보는 풍경이 하나의 생명체에게만 수천억 개라면, 우주가 듬성듬성 진공처럼 비어 보이는 것은 내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저 우주는 빽빽한 밀도로 깊어지는 심해처럼 투명한 무언가로 차 있거나,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에게만 보이는 장면들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우주와, 다른 별과 다른 생명체가 보는 우주가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몰아치듯 안도감을 준다. 기쁘게도 이 안도감은 사람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잦은 소외감을 잠시 희석한다. 나약해서 스스로에게조차 소외를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현기증이 이인증으로 단계를 밟아 증폭되기도 하는데, 적어도 내게 이런 기이한 상황은 대체로 씁쓸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인증에 싸인 듯 보이는 겨울 풍경이 만들어내는 즐거운 소외감은 나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단단히 발붙이고 땅 아래로 힘을 굳히는 시간으로 이끈다. 상상의 타래들은 소리로 바뀌어 단순하고 청량한 오르골 음색으로 연결된다. 감겨 있던 오르골 소리가 흐르다 점점 느려지고, 마침내 멈춘 뒤 맞닥뜨리게 되는 침묵의 현실을 깨닫는 것처럼, 상상은 반드시 현실의 감각으로 치환된다. 마주 보고 직시해야 할 것을, 강력하게 흡입하듯 끌어당긴다.
뉴스를 보는 일이 참 괴로웠던 시간이 길었다. 뉴스는 대체로 유명한 막장 드라마처럼 각색도 장면도 거칠고 자극적이다. 자극이 괴로워 TV 없이 산 지도 오래되었지만, 자극에 대한 민감도는 무뎌지기보다는 더 예민해지기만 한 것 같다. 살고 버티기 위해 세상사에 장막을 치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아야 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상상의 단단한 성에 틀어박혀 지내왔다. 이 성은 깨어지기 위해 지어진 구조물처럼 보인다. 깨어진 뒤 다시 마주하는 세상, 이 지독한 구체성.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사건들. 아, 죽고 싶게 만들면서도 살아가게 하는 분노, 구조적 폭력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읽고, 들여다보고, 듣는다. 무언가 하나를 깊이 파고들어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의 현실 속에서, 나는 그저 끊임없이 버틴다. 다시 말하기 위해서,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우리가 나누기 위해서, 다시 견고해진 상태로 굳건히 연결되기 위해서. 혼자 아픈 당신에게도—그래서 오늘은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냥, 다 받으세요.
새해가, 그냥 시작된 것처럼.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