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박진경 유공자 등록 취소했지만…4·3가담자 서훈 전면조사엔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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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부, 박진경 유공자 등록 취소했지만…4·3가담자 서훈 전면조사엔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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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유족측 "4.3가담자 유공자 서훈사례 전면 조사해야" 촉구에
권오을 장관 "당시 서훈자만 3만여명...이 선에서 마무리하는게..."
유족들 분통 "전수조사는 국가 의무...덮지말지는 저희들이 판단할 것"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자인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이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사진은 박진경 추도비 옆에 설치된 '박진경과 제주4.3'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안내판에는 그의 4.3당시 행적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자인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이 취소됐다. 사진은 박진경 추도비 옆에 설치된 '박진경과 제주4.3'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안내판에는 그의 4.3당시 행적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 강경 진압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이 취소됐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잘못된 서훈 사례에 대한 전면 조사 요구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난색을 표했다.

권오을 장관은 1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4.3유족회 및 4.3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 관련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권 장관은 보훈부가 등록 취소를 한 뒤 관련 안건을 보훈심사위원회로 넘겼다고 밝혔다. 이미 지정 취소가 된 상태이나, 이대로 사안을 마무리 할 지 아니면 보훈심의위원회 논의를 다시 거칠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족회 측은 이번 논란과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4·3 강경 진압 가담자들 가운데 무공훈장을 받거나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사례가 더 있는지 전면적인 사실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박 대령이 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느냐. 논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4·3 강경 진압을 지휘하다 부하에게 암살당했지만, 이후 1950년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4.3 진압 가담자가 무공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또 다른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전면적 조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권 장관은 "70여년 전 국가 안전 보장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은 서훈자만 3만 명에 달한다"면서 무공훈장 수훈사실에 대한 전면적 조사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권 장관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많은 분들 파묘 문제까지 나올 수 있고, 이건 국민 정서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서 이 문제는 4.3유족회에게는 조금 미흡하더라도 이 선에서 마무리하고 지나갔으면 하는 게..."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족회측은 "전수조사는 국가의 의무이고, 덮자 말자 화해하자는 건 저희들이 판단할 것인데, 왜 국가에서 덮자고 말씀하시냐"며 권 장관에게 강력 항의했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도 "악인이 영웅시 돼서 왜곡돼서 드러난 것은 이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전면적 사실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권오을 장관.
13일 오전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권오을 장관.

한편, 권 장관은 이날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 2월 26일자로 정식으로 (박진경 대령에 대한) 등록 결정을 취소하고 보훈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박진경 대령은 4.3당시 강경진압의 책임이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48년 5월 당시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9연대장으로 부임해 도민에 대한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4·3단체들로부터 양민 학살 책임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4.3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통해서도 4.3당시 양민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을 지휘한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15일 제주도에 있는 박 대령의 추도비 옆에 세운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에도 그의 4.3행적이 기술돼 있다. 안내판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제주도에 와서 40일 남짓 강경한 진압 작전을 벌였고 그 대가로 상관을 앞질러 대령으로 특진했다. 그 무렵 미군 비밀보고서에 “3,000여 명이 체포됐다”고 기록될 정도로 박진경은 무리한 작전을 전개했다.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는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등의 발언 사실도 기재됐다.

강경 작전을 펴던 박진경은 결국 그해 6월 18일 부하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게 암살됐다. 박 대령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라, 4.3 강경진압의 책임을 묻고 단죄를 해야 할 대상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2022년 4.3단체 등이 제주도에 있는 박진경 비석에 설치했던 '역사의 감옥' 모습. 박진경 추도비는 1952년 제주시 관덕정 옛 제주경찰국 앞에 군경원호회 명의로 세워졌다. 당시 전쟁 중인데다 제주4.3이 끝나지 않아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던 때로, 제주도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도비는 1980년대 제주시 충혼묘지로 옮겨졌다. 2022년 제주국립호국원이 개원했으나, 국립묘지에는 개인·단체의 추도비는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 호국원으로 이설이 어렵게 되자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옮겨진 상태다. <br>
사진은 지난 2022년 4.3단체 등이 제주도에 있는 박진경 비석에 설치했던 '역사의 감옥' 모습. 박진경 추도비는 1952년 제주시 관덕정 옛 제주경찰국 앞에 군경원호회 명의로 세워졌다. 당시 전쟁 중인데다 제주4.3이 끝나지 않아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던 때로, 제주도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도비는 1980년대 제주시 충혼묘지로 옮겨졌다. 2022년 제주국립호국원이 개원했으나, 국립묘지에는 개인·단체의 추도비는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 호국원으로 이설이 어렵게 되자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옮겨진 상태다. 

그럼에도 보훈부는 그가 6.25전쟁 당시 무공훈장을 받은 이력을 근거로 지난 해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제주사회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그의 사망시점이 1948년으로, 그의 무공훈장은 전시에 공적을 세워 받은게 아니라 4.3당시 진압작전 공적으로 받은 것이 드러났는데도 그대로 국가유공자 지정을 한 것이다.

양민학살 책임자에 대한 유공자 지정이라는 비판이 급속히 확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 그로부터 두달 여간 국방부와 보훈부를 중심으로 재검토를 한 끝에 취소 결정이 이뤄졌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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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2026-03-15 10:21:28 | 39.***.***.236
장난치나? 학살범에게 주어지지 말았어야 할 훈장이 있다면 전수조사해서 박탈하라!


유족 2026-03-14 13:26:02 | 220.***.***.2
"무공훈장 취소"가 선결조건이라게
안하면.ㅡㅡㅡㅡㅡㅡㅡ
국가유공자 취소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