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입도한 지 10년이 됐네요!”
얼마 전 제주에서 뜨개질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이분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연락을 드려 날을 잡았다. 통창 너머로 두터운 여름 구름이 걸린 한라산이 멀찍이 보이는 널찍한 카페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제주에서 만난 분이라 당연히 제주 태생일 거라 생각했는데, 박지혜 님은 원래 ‘육지 사람’이었다.
현재 ‘육지인’과 이제는 정착하여 제주 생활에 적응한 ‘육지인’과의 대화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의상 분야에서 일하던 박지혜 님은 2016년 섬으로 들어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색다른 일을 찾았다. 5년 정도의 제주 적응기를 마칠 때쯤 한림수직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한림수직의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제 좀 주거가 안정되고 그러던 차에 이 일을 접하게 된 거죠. 저는 워낙 클래식 니트라든가 한복을 했던 것도 있어서 한림수직을 정확히는 몰라도 ‘이런 게 있다’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요. 정확하게 언제 시작됐고, 현재 어떤 상태이고 이런 거는 모르지만 인스타그램이나 SNS를 봤을 때, ‘여기서 뭔가 내가 관심 있는 것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2022년 여름쯤이었죠. 공고가 하나 났어요. 10월에 니팅 기술을 전수받고 같이 배울 니터를 구한다는 모집 공고가 났어요. 그래서 ‘나 이거 해야지!’라고 생각했죠.”

한림수직사는 1961년 설립된 직물회사이다. 그 전신인 한림성당 수직강습소는 1959년에 태동했다. 제주 사람이라면(특히 40대 이상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또는 봤을 만한 것이 한림수직 스웨터이다.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양모 털실로 짠 ‘한림수직’표 스웨터, 조끼, 장갑이 있을지도 모른다. 6.25 전쟁 이후, 1960년대 우리나라는 아직 산업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고, 더구나 제조업이 발달 되지 않은 제주에는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육지의 도시로 떠나던 시절이었다. 특히, 제주에서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한림성당 주임으로 부임했던 맥글린치 신부(임피제 신부, 아일랜드 출신)가 제주 여성들에게 고향에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성이시돌목장에서 양을 키워 생산되는 양털로 실을 뽑아 스웨터, 목도리, 담요 등 제품을 만드는 한림수직사를 설립한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직조 기술을 배운 수녀님들이 제주 여성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림수직사 최전선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일을 하셨던 분이 ‘김명열 장인’이다.
“한림수직이 생겨날 때, 그러니까 선생님은 처음부터 같이 시작해서 수녀님들에게 기술을 전수받고 나중에 오랫동안 검수 과정을 맡아서 하신 분이에요. 선생님이 가끔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은 영어가 하나도 안 되고, 당연히 수녀님은 한국말이 전혀 안 되고요. 두 분이 그냥 단어와 눈치로 어떻게 통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이쪽 분야에서 오래 있던 입장에서 보면 그 느낌이 있거든요. 선생님은 감이 좋으셨던 것 같아요. 아마 요즘 태어나셔서 이 일을 하셨다면 정말 잘하셨을 거예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패턴이라든가 인체에 관련된 지식을 선생님은 그냥 감으로 알고 계세요. 그 당시 수녀님이 그냥 니트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이거 떠볼 수 있겠냐’ 하면 밤새 그걸 보고 떠보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그 모양을 떠서 수녀님께 보여드린 거예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력한 결과물을 신부님께 보여드리면 선생님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받아온 책을 보면서 패턴을 구현해 내면서 한림수직에서 작업을 하시다가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직원으로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60여 년이 흘러 수녀님의 제자였던 김명열 선생님은 지금 제자를 두고 있다. 바로 박지혜 님이 2022년 한림수직 니터 모집 공고에서 뽑혀 장인의 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1호 수제자이다. 제자 박지혜 님은 스승님께 교육을 받으면서 예전 한림수직사와 같이 주문을 받아 뜨개 작업(手織)을 하고 있다. 1기 니터로 들어온 수강생은 4명이었는데, 지금은 박지혜 님을 포함해서 2명이 남아 활동하고 있다. 올해 봄에 3기 니터가 모집되었고, 수강생들은 박지혜 님에게 교육을 받고 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신 스승님처럼, 박지혜 님 역시 일의 단절을 경험했다가 다시 본인의 전문 분야로 돌아왔다.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다가 대형 직물회사가 생겨나고 모직 제품이 대량 생산되면서 1990년대 쇠퇴기를 겪으며 2005년 결국 문을 닫게 된 한림수직에서 2021년 성이시돌목장과 콘텐츠그룹 재주상회의 ‘재생 프로젝트’로 스승과 제자의 단절의 시간이 만나게 된 것이다.
“저는 되게 좋았어요. 이 일이 수입이 있고 없고는 저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수입이 더 많아지면 좋겠지만 저는 계속 한림수직이 이렇게 활발히 유지가 돼서 제가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렇겠죠.”
1960~70년대 제주도 여성들에게 한림수직사는 좋은 일터를 제공하고, 경제적으로 가정에도 지역에도 큰 기여를 했다. 물론 지금의 한림수직이 그 시절만큼의 파급효과는 아니지만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이랑은 산업 자체가 달랐고, 그러니까 경제적 영향을 많이 줬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직 시작 단계라서 그렇지는 못한 것 같아요. 수익 구조도 그때랑 다르고요. 그렇지만 요즘은 점점 일이 가지는 의미가 달라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고요.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대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텐데,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핸드메이드’로 누군가에게 판매되는 것들은 없어지지 않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사람들에게 필요할 거고, 그 수요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요.”
올해 6~7개월가량의 ‘3기 장인니팅스쿨’의 교육이 끝나고 나면 가을 무렵에는 주문 제작이 시작될 것이다. 3기 수강생들도 테스트 니팅을 거쳐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소량 주문 제작이지만 니터들이 바빠질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니터의 뜨개질과 완성품을 기다리는 주문자의 기대감이 한 땀 한 땀 채워지며 서로 만날 때쯤, 60년 전 수녀님과 스승님, 그리고 수제자의 손길이 묻어난 제주의 ‘아란무늬(Aran Pattern)’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송영신 /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기획연구실장)>
(※ 한림수직에 대한 내용은 박지혜님과의 인터뷰와 더불어 다음의 자료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근현대 제주여성노동사 정립을 위한 기초 연구」(제주여성가족연구원, 2021), ㈜콘텐츠그룹재주상회 홈페이지 https://www.hallimhandweavers.com/)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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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몀서도 제주에 모직회사가 있었다는 갓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