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이젠 노선버스로...제주시~공항~서귀포시 '901번' 안착
신제주권~공항 '902번' 배정...첨단과학단지 수요응답형 자율차 운행
이용자 호응...시범운행 'A등급'...미래 모빌리티, 실생활 인프라 진화
복잡한 도로 구조와 교통난 속에서 정말 운전자 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달릴 수 있을까. 그것도 시민들을 수송하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 노선버스처럼 운행할 수 있을까. 관광지를 순회하며 여행객들의 이동을 돕는 관광형 버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트럭이 스스로 운행하며 화물을 수송하고, 도로를 청소하는 그런 날이 정말 올까.
꿈만 같던 자율주행차 운행의 시대가 실제로 열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미래 모빌리티인 자율주행차들이 제주 도심과 관광지를 달리고 있다. 노선버스형 ‘탐라자율차’와 첨단과학단지 내 수요응답형 ‘네모라이드’, 성산권 관광지를 운행하는 ‘일출봉Go!’ 등이 그것이다. 제주 교통환경에 특화된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형 차량들이다.
제주형 자율주행차는 이제 미래 모빌리티를 넘어 실생활 인프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는 제주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자율주행 서비스가 시민들의 일상에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살펴보고, 그동안의 성과를 점검하는 한편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과제와 향후 개선 방향을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901번.902번 버스, '탐라자율차'를 아시나요
정말 운전자 없이도 도심의 도로를 노선버스처럼 달릴 수 있을까. 자율주행차를 처음 접하는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볼 법한 궁금증이다.
9월이 시작된 첫 주.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제주시청 앞 버스정류장에 어김없이 자율주행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 버스보다 크기는 작지만, ‘901번’ 노선번호를 달고 운행하는 엄연한 노선버스다. 제주에서 운행 중인 ‘탐라자율차’다.

탐라자율차 901번은 제주시청에서 서귀포시 제1청사까지 69.8km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제주시 도심권에서는 버스터미널을 거쳐 제주국제공항을 경유한다. 이어 신제주로터리와 제주도청 앞, 롯데마트, 정존마을 등 교통이 복잡한 신제주권을 통과해 평화로에 들어선다.
서귀포시권에서는 중문관광단지를 거쳐 제주월드컵경기장, 서귀포버스터미널, 서귀포시 제1청사가 있는 환승정류장(서귀포등기소)까지 이어진다.
버스 문이 열리고 차량에 올라서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세이프티 드라이버(Safety Driver)’, 즉 안전운전자가 승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차량은 자율주행으로 운행하지만 안전운전자가 함께 탑승한다. 현행 법령 규정상 탐라자율차와 같은 '레벨 3' 기술을 기반으로 운행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안전운전자의 동승을 의무화하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등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는 수동운전으로 전환하고, 자율주행 중에도 주변 위험 요소를 살피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운전에 개입하기 위해서다.


차량 내부는 일반 버스와 달리 비교적 아담하다. 좌석은 1인석과 2인석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12석이다. 승차할 때는 일반 버스와 마찬가지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태그하면 된다. 요금 역시 시내버스와 같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하자 차량이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차량 내부 스크린에는 주변 교통 상황이 펼쳐졌다. 주변 차량의 움직임은 물론 운행 차선과 차량 속도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자율주행 ON’이라는 표시등이 켜졌다.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소 복잡한 서광로 구간에 들어서자 각 차선에서 주행하는 차량들의 상황이 스크린에 표시됐다. 신호등 앞에서 차량이 멈춰 서자 승객들은 차량 밖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스크린을 통해 신호등이 빨간불인지 파란불인지 알 수 있었다.
자율주행차가 주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는지 승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직선도로를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신제주입구(옛 해태동산)에서 공항 방면으로 우회전했다. 급경사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초행 운전자에게도 긴장감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차량은 방향지시등을 켠 뒤 주변 교통 흐름을 세심하게 확인하며 속도를 조절했고, 자연스럽고 안정적으로 우회전에 들어갔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뒤에는 여러 차로 가운데 공항 여객청사로 진입하기 위한 차로로 안전하게 이동했다. 운전자가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았지만 차량은 주변 상황을 인식하며 차선을 변경하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복잡한 도로 환경에서도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판단해 주행하는 자율주행 기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차벨을 누르자 차량은 공항 여객청사 앞 해당 정류장에 안전하게 정차했다. 승객을 내려준 차량은 다시 신제주권을 향해 달려갔다.
이 차의 최대 속력은 시속 80m 정도다. 전체 구간의 총 소요시간은 1시간 50분으로 다소 길게 느껴지지만, 도심 구간에서는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일반 노선버스는 물론 급행버스보다도 정차하는 구간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시청에서 제주공항까지는 약 12~15분이 소요됐다. 이는 자율주행차와 동일한 경로를 운행하는 일반 노선버스(43-1번 등)나 중앙로와 용담을 경유하는 급행버스(302번)와 비교해도 빠른 편이다.

제주공항을 가기 위해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본 적이 있다는 부모씨는 "처음부터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정류장에 부착된 노선별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다 곧 도착할 예정인 탐라자율차 노선을 보고 탑승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비교적 한적한 오전 시간대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놀랐다"고 덧붙였다.
자율주행차를 타 본 소감을 묻자 부모씨는 "관리자 두 분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기는 했지만, 자동차가 알아서 주행한다고 하니 살짝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며 "생각보다 자율주행차가 교통 상황을 잘 분석하고 속도까지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주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신제주권~공항 잇는 자율주행 902번…요금 결제도 간편하게
탐라자율차의 또 다른 노선인 902번은 신제주권을 운행한다. 노형동 롯데마트 앞을 출발해 제주도청 신제주로터리와 제주국제공항을 거쳐 다시 신제주로터리와 롯데마트로 돌아오는 왕복 9km 구간의 단거리 순환노선이다.
노형동에서 신제주로터리나 제주공항으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공항에서 신제주권으로 이동할 때 이용하기 편리하다. 현재 오후 5~6시 전후 하루 2회 왕복 운행하고 있다.

901번과 902번은 접근성은 물론 이용 편의성까지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도는 2024년부터 진행한 시범운행 데이터를 분석해 노선과 시간표, 결제 방식 등을 전면 개편하고, 지난해 6월부터 개선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 티머니 카드에 더해 제로페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편의성을 높였다. 외국인 관광객도 별도의 교통카드 없이 스마트폰으로 요금을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난해 8월부터는 청소년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정책과 연계해 도내 청소년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 첨단단지~제주대 수요응답형 자율주행서비스...'탐라자율차 첨단'
노선버스형으로 운영되는 901번과 902번 탐라자율차와는 다른 형태의 자율주행 서비스도 있다. 제주시의 대중교통 취약 지역으로 꼽히는 첨단과학단지와 제주대학교 일대 13.2km 구간에서 운행되는 수요응답형 자율주행차(DRT) ‘탐라자율차 첨단(기존 네모라이드)’이다.
이 구간은 첨단과학기술단지와 제주대학교를 연결하는 노선버스가 부족해 학생과 시민들의 이동에 불편이 큰 지역이다. '탐라자율차 첨단'은 이러한 대중교통 공백을 보완하는 이동 서비스 역할을 하고 있다.
8월21일부터 12월31일까지 시범 운행되는 '탐라자율차 첨단'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테크노파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체결한 업무대행 협약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JDC는 협약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서비스 운영을 지원하고, 실제 도로 환경에서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의 실증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운행 방식은 901번과 902번 노선버스와는 다른 형태다. 탐라자율차 첨단은 QR코드를 통한 예약제로 운행된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은 QR코드를 스캔해 자율주행차 호출 전용 웹페이지에 접속한 뒤 출발지와 도착지, 승차 인원 등을 설정해 차량을 호출하면 된다.
호출이 접수되면 자율주행차는 지정된 운행 구역 내에서 승객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고려해 최적의 이동 경로를 도출하고, 예약된 승객이 있는 장소로 이동해 탑승을 지원한다. 노선을 운행하는 탐라자율차와 달리, 이용 요금은 무료다.
◇ 미래 모빌리티 제주 자율차, 이젠 일상 속 대중교통으로...
제주의 자율차 운행은 오랜 준비 끝에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차세대 지능형 교통체계(C-ITS) 실증사업을 통해 제주의 도로 여건과 교통 특성에 맞는 제주형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2020년 7월 자율협력주행을 선보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는 2020년 12월 제주공항~중문관광단지 평화로 38.7km 구간과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로 처음 지정했다.
이때부터 자율차 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준비 등이 본격화됐다. 2021년 12월에는 시범운행지구 내에서 서비스 실증이 시작됐다. 2022년 5월에는 국토교통부의 자율주행 모빌리티 시범사업(탐라자율차)에 제주도가 선정됐다. 2023년 6월에는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가 지정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제주도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운영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2024년 국토부 자율차 시범운행지구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3월부터 첨단단지 내 자율주행 셔틀 '네모라이드'가 시범 운행됐고, 7월부터는 제주지역 최초의 노선버스형 자율주행차인 '탐라자율차'의 시범운행이 시작됐다.
탐라자율차 운행은 제주지역 자율주행 전문기업인 ㈜라이드플럭스가 맡고 있으며, 제주테크노파크가 관리·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라이드플럭스는 국내 최초로 무인 자율주행차 도로 운행 허가를 받은 스타트업으로, 제주 교통환경에 특화된 자율주행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간 시범운영을 통해 자율주행차의 안정성과 대중교통으로서의 실용성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관광객은 물론 도민들의 생활 주요 거점까지 운행 구간을 확장하면서 이용객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탐라자율차(901번·902번)의 경우 시범운행이 처음 시작된 2024년 7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총 6487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선별 이용객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901번이 4921명, 신제주~공항을 운행하는 902번이 1566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24년(7월 26일~12월 31일) 1493명 △2025년(6월 12일~12월 31일) 2334명 △2026년(1월 5일~7월 31일) 2660명이다.
수요응답형인 '탐라자율차 첨단'은 종전 운행 시스템이 적용된 2024년(3월 15일~10월 18일)에는 3269명, 지난해 말(11월 26일~12월 31일)에는 337명, 올해 시범운행 기간(2월 2일~4월 30일)에는 566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주 자율주행 서비스가 미래 모빌리티를 넘어 실생활 속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가 전국 36개 시범운행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운영성과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등급(매우 우수)을 획득했다. 자율주행 서비스의 성과와 안정적인 운영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장철원 제주특별자치도 미래산업국장은 “그동안 탐라자율차 노선과 첨단단지 수요응답형 버스를 이용해 주신 도민과 관광객의 소중한 탑승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비스 품질과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최초로 무인 자율주행 임시운행허가를 취득하는 등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자율주행 대중교통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헤드라인제주>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과 취재협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