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지출은 지역화됐지만 결정은 아직 중앙에 있다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역할은 이미 상당히 커졌다. 복지·건강·돌봄·교통·농업·지역개발 등 주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정책 대부분이 지방정부를 통해 집행된다. 2026년 정부 간 이전재원을 조정한 총 재정사용액을 기준으로 보면, 중앙정부가 41.8%, 지방정부가 45.4%, 지방교육이 12.8%를 사용한다(행정안전부, 2026).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을 합하면, 전체의 58.2%가 지역 수준에서 집행되는 셈이다. 적어도 재정지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지역의 역할이 중앙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하위정부 지출비중은 낮은 편이 아니다. OECD가 2026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하위정부의 지출은 전체 공공지출의 43.4%로 OECD 평균 38.5%를 웃돈다. 그러나 캐나다 72.6%, 덴마크 65.8%, 스위스 62.7%, 스웨덴 50.9%, 스페인 50.4%, 독일 48.0% 등 분권 수준이 높은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있다(OECD, 2026). 경제규모와 행정역량,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더 높은 수준의 재정분권을 지향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재정의 규모보다 그 성격이다. 지방정부가 많은 돈을 쓴다고 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지방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정부가 정책목표와 대상, 사업방식, 지원기준을 정하고, 지방정부가 국고보조금에 대응지방비를 보태 집행하는 사업이 적지 않다. 즉, 우리나라 지방분권의 핵심적인 한계는 재정집행의 지역화에 비해 정책결정의 지역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방에서 한다고 해서 지방자치인 것은 아니다
정책의 지역화는 중앙정부가 하던 일을 지방정부가 대신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문제를 정의하고,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결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가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책운영은 크게 중앙집권형과 지방자치형으로 나눌 수 있고, 중앙집권형은 다시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직접 집행하는 중앙 직접형과 중앙정부가 결정하되 지방정부가 집행하는 행정적 분산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정적 분산은 겉으로는 지방분권처럼 보인다. 지방공무원이 사업을 집행하고 지방예산도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법령과 사업지침, 국고보조금 등을 통해 정책의 주요 내용을 결정한다면, 지방정부는 정책의 결정주체라기보다 집행주체에 가깝다. 따라서 행정적 분산은 권한의 분권이 아니라 집행의 분산이다. 지방정부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지방자치의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형은 지방정부가 자신의 책임 아래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선택하고 재원을 배분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다. 그렇다고 중앙정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권리보장과 최소기준, 지역 간 격차 조정 등을 담당한다. 결국, 정책의 지역화란 결국 중앙·광역·기초정부 가운데 어떤 정책을 누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적절한지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를 중심에 놓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일은 어디까지 ‘자기 일’인가
현재 우리나라 제도에서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일은 모두 같은 성격이 아니다. 지방정부가 자기 책임으로 처리하는 자치사무가 있는 반면, 국가의 사무를 지방정부가 맡아 처리하는 위임사무도 있다. 재정에서도 지방정부가 지역의 필요에 따라 직접 설계하는 자체사업이 있는가 하면, 중앙정부가 사업내용과 조건을 정하고 지방정부가 일부 재원을 부담하면서 집행하는 국고보조사업이 있다. 겉으로는 모두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일이지만 실질적인 정책결정권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정책 지역화의 수준은 적어도 네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사무자치도는 그 일이 본래 누구의 사무인지, 정책자치도는 정책의 목표‧대상·수단을 누가 만들고 결정하는지, 재정자치도는 재원의 규모와 용도를 얼마나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지, 책임자치도는 결정권에 상응하는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이 네 요소가 함께 높아질 때 지방정부는 단순한 집행기관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주체가 된다.
특히 재정자치를 지방정부가 얼마를 부담하는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가 만든 사업에 지방정부가 많은 대응지방비를 투입한다고 해서 재정자치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체재원이 중앙정책에 묶이면서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비판이 크게 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의 돈을 늘리는 것과 함께 지방정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책에 투여되는 돈을 늘리는 것이다.
▶노인정책을 보면 정책 지역화의 현실이 보인다
노인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6년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험 급여를 제외한 노인지원 예산은 2016년 약 15조 5천억 원에서 2025년 약 41조 5천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사업을 기획한 정부수준을 기준으로 보면, 2025년 중앙정부 자체사업과 국고보조사업이 전체의 87.0%를 차지한다. 광역정부 자체사업과 지방보조사업은 10.3%, 기초정부 자체사업은 2.6%에 그쳤다(국회예산정책처, 2026).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도 중앙정부가 기획한 사업에 포함하여 분석했다는 점이다. 지방정부가 실제로 돈을 부담하고 사업을 집행해도 정책의 기본 틀을 중앙정부가 정했다면 중앙정부 주도사업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노인지원 예산은 지난 10년 동안 크게 늘었지만, 중앙정가 주도한 예산사업 비중은 2016년 85.2%에서 2025년 87.0%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즉 지방의 집행과 재정부담은 커졌지만 정책결정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다만 노인정책 안에서도 차이는 크다. 소득보장과 노인일자리, 보호·안전은 중앙정부 주도성이 매우 강한 반면, 사회참여·정서지원, 생활지원 등에서는 지방정부 자체사업의 비중이 높다. 주거 분야에서는 노인주거복지시설 운영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중앙정부 주도사업의 비중이 2021년 81.4%에서 2025년 17.0%까지 낮아졌다. 이는 실제로 사무와 재정, 결정권이 지방으로 이동하면 정책구조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한만 넘겨서는 정책의 지역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의 지역화는 모든 정책을 지방에 넘기자는 주장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동일한 권리보장과 소득재분배가 중요한 정책은 중앙정부의 책임이 클 수 있다. 반면 여러 기초지방정부의 경계를 넘어 서비스 공급체계를 조정해야 하거나, 대규모 시설·전문인력·전문기술을 공동으로 확보해야 하는 정책은 광역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그리고 돌봄·생활지원·주거·이동‧도시계획처럼 주민생활과 밀접하고 지역별 여건 차이가 큰 정책은 기초정부가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을 지방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역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정의하며, 원인을 분석하고, 여러 해결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여러 대안 가운데 비용과 효과, 형평성, 지속가능성, 실현가능성을 비교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결정권은 최소한의 역량만으로도 행사할 수 있지만, 자기 판단에 의한 좋은 결정은 충분한 문제해결역량 없이는 어렵다.
따라서 정책의 지역화는 권한과 책임의 지역화인 동시에 문제해결능력의 지역화여야 한다. 지방정부 공무원뿐 아니라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중간지원조직, 사회연대경제조직, 주민과 현장전문가가 함께 지역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정책생태계가 필요하다. 외부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지역 내부에 축적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의 다음 단계는 정책의 지역화다
앞으로 지방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지방정부에 돈을 더 배분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중앙·광역·기초가 각각 어떤 정책분야와 정책사업을 책임질 것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하고,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정책에는 실질적인 결정권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세부내용까지 정하는 국고보조사업은 줄이고 지방정부가 지역의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자율적인 재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재정분권은 지역의 역량강화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역의 역량이 충분해질 때까지 권한과 재정의 이양을 미루자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권한과 재정을 행사하는 경험 자체가 지역의 역량을 키운다. 따라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면서 권한과 재정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정책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한 뒤 다시 더 큰 권한과 재원을 맡기는 단계적이고 순환적인 지역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앞으로의 지방분권은 ‘지방에 얼마를 더 줄 것인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지방정부의 일로 할 것인가, 그 일을 결정할 권한은 어디에 둘 것인가, 그 책임을 감당할 역량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리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보장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결정할 권리와 책임질 의무,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역량과 자율 재원이 함께 지역에 축적될 때 지방분권은 비로소 실질적인 지방자치로 발전할 수 있다. <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행정안전부(2026), 「2026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 및 기금 개요」.
국회예산정책처(2026), 「노인 지원 사업의 재정전망과 기초연금 시나리오 분석」.
OECD(2026), Subnational Government Structure and Finance in OECD Countries: Key Data, 2026 Edition.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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