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엇갈리는 지표, 복잡해지는 제주사회의 문제들
제주사회는 지금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역경제의 침체와 관광산업의 부진, 좋은 일자리의 부족,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소득과 자산의 격차, 주거비 부담, 의료와 돌봄의 지역격차, 환경문제와 사회적 갈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최근 경제적 어려움과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각각의 문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6년 10월 한국지역혁신연구원이 발간한 「제주 사회경제 현황 지표」는 최근 제주경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2025년 역성장을 기록한 제주경제는 2026년 1분기 1.8% 성장했지만 2분기에는 다시 0.0%로 정체되었다. 서비스업 생산은 6개 분기 연속 감소했고, 도민의 카드소비는 증가했지만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소비 확대는 제한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고용은 증가했다. 9월 고용률은 71.9%로 전년보다 2.1%p 상승했고 취업자도 약 1만 2천 명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상용근로자는 2천 명 감소하고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는 1만 3천 명 증가했다. 고용의 양적 확대가 안정적인 임금근로 일자리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과 고용의 증가가 도민의 안정적인 소득과 생활수준 개선으로 얼마나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서로 연결되고 중첩되는 제주사회의 격차
경제적 어려움의 정도는 도민 모두에게 같지 않다. 한국지역혁신연구원이 2024년 수행한 「제주지역 사회적 격차 실태조사 및 방향성 모색 연구」에서는 소득, 자산, 주거, 교육, 노동, 건강, 여가, 사회관계망 등 8개 영역의 격차와 성별·지역 간 격차를 분석했다. 특히 개별 영역의 격차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중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주는 근로소득 격차가 전국보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자산과 주거의 격차는 상당하다. 2022년 제주 주거실태조사에서는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48.7%를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 참여와 지출의 차이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격차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산의 차이는 주거 안정성과 교육기회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교육기회의 차이는 다시 노동과 소득의 격차로 이어진다.
인구문제 역시 다른 사회문제와 분리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2024년 제주의 총인구는 전년보다 감소했고 순이동 인구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청년의 지역 이탈에는 일자리의 수뿐 아니라 임금과 고용조건, 주거비, 교육과 문화의 기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령화 또한 단순히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와 돌봄, 교통과 일상생활 지원체계, 지역공동체의 유지와 연결된다. 특히 읍면지역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생활서비스의 부족과 결합하면서 정주여건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제주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개별적인 현상이면서 동시에 서로 연결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침체와 불안정한 고용, 소득과 자산의 격차, 생활서비스의 지역격차, 인구 감소와 공동체의 약화가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개별 문제에 대한 대응과 함께 이 문제들이 연결되는 구조를 고려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민선 9기 도정의 정책 방향과 목표의 구체화
이러한 상황에서 출범한 민선 9기 제주도정은 지난 10월 8일 10개 분야, 100개 공약사업과 337개 실천과제를 확정하고, 2030년까지 9조 7,576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지역경제의 회복과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를 함께 추진하면서, 도민의 기본적인 생활조건을 보장하고 지역경제의 성과를 도민에게 환원하려는 방향이 담겨 있다. 민생금융 안전망과 지역경제 선순환, 청년의 소득·주거 안정, 의료자치와 통합돌봄, 생활권 이동권 보장, 미래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이 대표적이다.
주목할 점은 현안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 간 연계도 모색한다는 것이다. 제주형 기본사회는 부서별 복지사업을 넘어 소득·노동·주거·의료·돌봄·교통·문화 등의 기본서비스를 생활권 단위에서 통합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청년기본소득과 일자리·주거·금융정책 사이의 연결, 의료와 돌봄의 통합적 제공,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지역문제 해결과 공공서비스 참여 확대, 지역화폐를 통한 지역경제 선순환 등도 역시 여러 정책목표를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구상은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정책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이 제주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실제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제 목표를 구체적인 세부목표로 전환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수단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민선 9기 도정은 이미 민생경제 회복과 기본사회 실현, 미래성장과 기후경제 전환 등 주요 목표를 제시했다. 앞으로는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변화시킬 것인지 구체화하고, 그 변화를 실현할 수단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좋은 목표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이를 실현할 전략과 수단이 적절하지 못하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기대한 성과를 얻기 어렵다. 공약집이나 비전계획은 지면과 형식의 한계로 구체적인 집행수단을 모두 담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마련될 세부 시행계획에서 목표 달성에 적합한 정책수단을 선정하고, 그 작동방식과 효과를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민이 직접 집행하고 편익을 누리는 정책
여기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정책수단의 설계다. 정책의 성과가 도민에게 돌아오는 방식은 다양하다. 기업과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증가한 소득과 세수를 통해 도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방식도 있다. 이러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성장의 성과가 여러 단계를 거쳐 도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편익이 얼마나 넓고 고르게 확산될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이에 더해 도민이 직접 정책의 집행주체가 되고 그 활동에서 발생하는 편익을 스스로 누리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직접 조직을 구성하여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생산·공급하고, 그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거나 사업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도민은 단순한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을 집행하면서 동시에 그 성과를 누리는 주체가 된다. 특히 이러한 직접적인 집행과 편익의 귀속을 경험하는 도민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것이 중요한 정책전략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마을 단위 돌봄조직을 직접 운영하면 지역에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공급하는 동시에 주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그 서비스를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주민들이 에너지협동조합을 운영하면 에너지사업의 집행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수익을 공동으로 누릴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정책의 결과를 수혜자에게 배분하는 것과 다르다. 정책의 집행과 편익의 귀속을 하나의 구조로 결합하는 것이다.
정책 간 연계와 시너지 효과의 창출
정책 간 연계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 사업을 각각 집행한 다음 사후적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처음부터 각 정책수단의 내부에 다른 정책과 연결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사업에 주거와 교육·훈련 지원을 결합하고, 의료서비스에 돌봄과 교통을 연결하며, 지역산업 육성사업에 지역기업과 주민의 소득증대 경로를 포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계가 개별 과제의 실행구조에 자리 잡아야 정책 간 협력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간 연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너지 효과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각각의 정책사업에는 기획과 관리, 계약과 평가 등에 필요한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여러 정책을 함께 설계하고 집행하면 이러한 비용의 일부를 줄이고 인력과 시설, 정보 등의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책활동이 여러 정책목표의 달성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 돌봄조직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역주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성장과 마을공동체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업을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활동을 통해 여러 성과가 함께 발생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물론 연계에 따른 조정비용과 운영상의 어려움도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용보다 더 큰 편익과 정책효과가 발생하도록 시너지를 정책의 설계 단계부터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정책을 주민이 직접 집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성과 법적 자격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전문기관의 책임과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 다만 주민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주민조직이 정책의 집행주체가 되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연대경제와 마을공동체, 생활권 기본서비스 분야에서 이러한 방식은 중요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정책성과의 평가기준도 구체화해야 한다. 민선 9기 제주도정은 공약의 성과를 행정의 진도율이 아니라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평가받겠다고 밝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산집행률과 사업완료율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도민이 어떤 편익을 직접 얻고 있는지, 주민이 직접 정책을 수행할 기회와 권한이 확대되었는지, 정책 간 연계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추가적인 성과를 창출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나아가 공약사업들이 도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켰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줄어들며, 필요의료·돌봄서비스를 적시에 이용한 횟수가 늘어야 한다. 교육과 문화활동의 기회, 교통과 생활서비스의 접근성 등 일상생활의 조건도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개선이 일부 계층이나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계층·세대·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나는지도 중요하다. 도민의 만족도와 행복감의 변화는 보조적 평가기준이다. 삶의 질의 객관적 개선 위에서 주관적인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민선 9기 제주도정은 이제 출발했다. 지금은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기보다 제시된 목표를 구체화하고, 이를 실현할 전략과 수단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도민이 직접 정책을 집행하고 그 편익을 누리도록 하며, 이러한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은 도민에게 확대하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하나의 정책활동이 여러 사회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도록 정책 간 연계와 시너지 효과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민선 9기 도정은 이미 주요 정책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제시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단들이 실제 집행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도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느냐이다. 특히 제주사회의 복잡한 문제와 다중격차를 고려하여 도민이 직접 정책을 집행하고 그 편익을 누리는 기회를 확대하며, 정책 간 연계와 시너지 효과가 실제로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원칙들이 정책집행에 충실히 반영될 때, 민선 9기 도정이 약속한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도 더욱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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