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모두의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누군가는 그저 바라만 봐야 하나요?”
무더운 여름, 청량한 바닷가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를 즐기는 행복 뒤편으로 마음 한구석에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토록 당연하게 즐기는 축제를 누군가는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턱과 따가운 햇볕과 혼잡한 인파까지. 도저히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웃으며 즐기고, 어떤 사람은 멀리서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요? 학교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이야기하지만, 왜 '함께'라는 말에는 항상 예외가 존재하는 걸까요?
표선해수욕장은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변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접근성이 현저히 부족한 공간입니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해변에 다가가려면 넓은 백사장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내리막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마저도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많아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화장실이나 샤워장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휠체어가 들어가기에는 비좁고, 무장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이끼' 동아리 선배들은 지난해 여름, 지역 청년회와 함께 '무장애 해수욕장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해변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BF(Barrier-Free) 매트를 설치하고, 카카오의 지원을 받아 해변용 휠체어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 축제에서 한 어르신께서 “나도 오랜만에 바다 가까이 와봤다”고 하셨다는 말을 선배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작은 준비였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2024년 무장애 해수욕장 축제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었습니다. BF 매트를 처음 설치해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의 해변 접근성을 높였고, 무장애에 대한 인식을 지역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준비 시간이 짧고 장비가 한정적이어서 일부 구간의 매트 길이가 짧거나 해변용 휠체어 수가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2025년에는 그러한 아쉬움을 보완하여 더욱 풍성한 축제로 준비했습니다. 올해 축제는 더욱 다양하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테라리움 만들기 활동과 일본에서 시작된 ‘유루스포츠(Yuru Sports)’를 새롭게 도입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유루스포츠는 복잡한 규칙이나 높은 수준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지 않아, 남녀노소는 물론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느슨한 스포츠입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대표 종목인 ‘500보 축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500보 축구는 참가자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500보 이내로만 움직이며 경기를 즐기는 방식으로, 신체적 조건과 무관하게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무장애 해수욕장의 취지를 실현하고, 심리적 포용성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해변용 휠체어는 별도의 대여소를 마련해 운영의 효율을 높였고, 장애인 패들보드 체험처럼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바다를 체험하는 새로운 활동도 준비했습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지역 청년회와 저희 '이끼' 인권동아리가 축제 준비 전부터 긴밀히 협력하며, 프로그램 기획부터 현장 운영, 피드백 수렴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이뤘습니다. 축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고,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무장애는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시설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물론, 유아차를 끄는 부모, 어린아이, 노인, 일시적으로 다리를 다친 사람까지 누구나 이동에 불편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장애는 특정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필요로 하게 될 당연한 권리입니다.
특히 제주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서 무장애 환경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기회 자체를 만들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필수 요소입니다. 지금도 많은 관광지가 가파른 경사나 좁은 길 때문에 휠체어나 유모차의 접근이 어렵습니다. 저는 무장애 관광이 '복지'나 '서비스' 차원을 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여행을 즐기고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아이든, 그 누구든 ‘축제의 시민’, ‘관광의 시민’이 될 권리가 있습니다. 표선 무장애 해수욕장 축제는 그 첫걸음을 보여준 소중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해변용 휠체어, BF 매트, 모두를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이 바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노력이 개별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도록, 무장애 관광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공공시설 접근성에 대한 의무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간 사업장의 참여를 유도하고, 예산과 인프라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장애 해수욕장은 지역 사회의 미래다.”
이 말은 단순히 해변에 매트를 깔고 휠체어를 준비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여름,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간. 그런 미래가 이 작은 해변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저는 느꼈습니다.
아직 저희 동아리의 활동이 지역 사회의 작은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제주 전역, 나아가 전국으로 무장애 관광이 확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 우리가, 모두가 바라던 바다를 만들고 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결코 작지 않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강지원/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이끼'>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