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음악을 듣다보면 곡마다 그에 얽힌 사연이 있듯이 우리가 처음 이 곡을 만났을 때의 감동 또한 잊혀지지 않은 음악이 있다. 그래서 어떤 곡은 기쁨과 환희로 다가오고 또 어떤 곡은 슬픔과 비애로 먼저 다가온다. 여기에 어울리게 부제목 또한 ‘환희의 송가’나 ‘엘레지’ 등을 붙여 감정을 한껏 끌어올린다. 그런데 악기 자체가 주는 곡의 느낌은 어떨까, 고전음악은 마치 팔색조 같아서 한가지 악기로 희노애락을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고 사시사철 어느 계절에 들어도 그 계절에 맞게 작곡된 곡들이 많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고 끝까지 귓가에 음률이 맴도는 악기가 있다. 아르페지오네가 바로 그런 종류의 악기다.
필자가 처음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만난 건 이십 대 초의 가을이었다. 비올라 소리도 아니고 첼로도 아니면서 은근한 울림이 있는 둥근 소리로 어떤 현악기도 따라올 수 없는 아르페지오네의 음률은 한동안 필자가 잠을 설 칠 정도로 들었던 곡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다 외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 콧노래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악기 아르페지오네는 1823년 빈의 슈타우퍼(G.Staufer)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로 ‘하프를 연주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아르페지아레(Arpeggiare)’에서 따온 이름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와는 달리 마치 기타처럼 여섯 줄로 이루어진 아르페지오네는 고작 십년 남짓 존재했던 악기였으므로 이 악기를 위한 음악자체도 거의 없다. 따라서 현재 이 곡의 연주는 비올라나 첼로가 대신하고 있는 곡이다.
이런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또 그리 오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어보면 이 곡속에 흠뻑 빠지고야 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곡이다. 특히 슈베르트의 생활과 그의 감성이 녹아 있는 이 곡은 슈베르트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작곡한 곡이라 더욱 애틋함이 묻어난다. 슈베르트는 31세라는 짧아도 너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당대에는 무명의 작곡가였고 어느 한 순간도 가난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작곡가다. 그런데 이 곡을 작곡했을 때가 유독 더욱 가난과 질병으로 힘들었을 때라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심지어는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을 정도로 삶이 피곤했던 작곡가였지만 그는 가난과 슬픔을 오롯이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라리 슬픔을 한 단계승화시키면서 그 속에서 인생의 또 다른 면을 찾았던 작곡가다.
슈베르트의 또 다른 닉네임이 ‘가곡의 왕’이듯이 아르페지오네의 시작은 마치 노랫말처럼 유연히 흘러간다. 유려한 피아노의 주제선율로 시작되는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는 단조로 슬픔과 비애를 노래하지만 그윽하고 둥근 아르페지오네에 가려서 왠지 슬프기보다는 슬픔을 덮어주려는 의지로 느껴진다. 다시 제2의 주제선율에 와서는 마치 인생을 달관한듯 차분한 음률이 이어져나간다. 2악장 아다지오의 수려함은 감히 어떤 곡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에 와서 달라붙는다. 절대로 이 곡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안착감을 주는 악장으로 주제음은 노래하듯, 물흐르듯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 알레그레토는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듯 보이나 두 주제가 번갈아가면서 나타내는 질서의 미로 인해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앞으로 다가 올 희망과 현재의 긍정을 암시하는 3악장은 클래식매니어들을 한번씩 흥분으로 몰아넣었다가 맑은 물에 정화를 시키는 담금질을 하게 한다.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바로 슬픔과 비애 뒤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순간, 즉 슈베르트의 말을 빌자면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역설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큐알(QR)코드
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에서는 음악을 바로 들으실 수 있도록 큐알(QR)코드가 함께 게재됩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QR코드를 인식하고 화면에 나타나는 주소를 클릭하면 유튜브로 연결되고 플 레이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재생됩니다
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