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36)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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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36)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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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미술가, 그리고 시인 등 예술가들의 작품을 읽거나 듣고 또는 보면서 감상하다 보면 인물의 모습은 모를지라도 어렴풋이 인상이나 성격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바그너는 왠지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 같고 리스트는 화려한 매너의 표상이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인상은 어떨가. 그의 곡들, 파반느, 시실리안, 엘레지, 꿈을 꾼후에 또는 레퀴엠 등의 곡에서 풍기는 그의 인상은 누가 뭐래도 종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곡 중의 많은 부분이 그레고리언 성가의 한 소절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포레의 곡들에는 경건함, 엄숙함과 함께 명상적인 느낌이 드는 곡들이 많다.

포레의 곡은 지금에야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로 수위의 반열에 오르는 곡도 있지만 사십 년전을 생각하면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자에게는 피아노를 피아니스트 못지 않게 잘 치고 문학과 클래식음악에 조예가 깊은 한 여고 동창생이 있었다. 국문과에 입학한 그 친구는 비록 필자와 전공은 다르지만 둘 다 클래식음악 애호가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오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다. 20대 초, 한참 서로가 들은 음악을 나누고 같이 들으면서 주로 대화의 반열에 올렸던 작곡가가 바로 가브리엘 포레였다. 그 친구가 쳤던 포레의 무언가, 그 중에서도 특히 3번의 따스함에 한참 동안 빠졌던 기억이 있다. 포레 음악의 성격인 단순함, 깨끗함과 함께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이 곡은 언제 들어도 잔잔한 설레임이 이는 곡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인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포레를 오늘날의 포레로 한국인의 가슴을 셀레이게 만든 건 순전히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덕이라 할 수 있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오랫동안 연주자 생활을 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고국에 돌아오면서 가브리엘 포레의 곡을 가져와 연주하기에 이른다. 언젠가 한국에 다니러 갔을때 콘서트 장 마다 가브리엘 포레의 곡이 레퍼토리로 나와 있는 풍경을 접하고는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마치 프랑스 문화의 한 부분을 심어 놓은 둣한 포레의 곡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국의 정취와 색깔, 그리고 향기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브리엘 포레는 시기적으로(1845~1924) 보자면 후기 낭만파에 속한다. 프랑스 남부쪽에서 태어난 포레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교회 음악학교에 입학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통털어 보건대, 포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생상이 아닐가 한다. 우리에게 동물의 사육제로 잘 알려진 생상이 마들렌 성당의 수석 올개니스트로 있을 때 포레는 보조 올개니스트였다. 그때 생상은 포레에게 슈만, 리스트, 바그너 등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을 소개해 주게 된다. 또한 포레의 밑으로는 라벨이나 드뷔시, 블랑제 등의 작곡가가 있었지만 포레는 본인의 성향을 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포레의 사생활을 보면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고 염문을 뿌리고 다닌 적도 많았다. 그 중에 가수 엠마 바르딕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딸 돌리를 위해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이 곡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유명한 돌리모음곡이다. 부모를 차례로 잃은 후 작곡한 포레의 레퀴엠은 최고의 명곡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의 나이 60세에 그 유명한 파리음악원장이 되었다는 그의 이력 역시 그가 은근과 끈기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다방면의 사람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당시 파리음악원 출신이 아닌 사람이 원장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장이 되어서 그는 음악행정에 있어서도 심사원들을 모두 외부사람으로 임명하는 등 개혁적인 일을 단행했다. 청각에 이상이 생긴후 1920년 원장직을 사임하고 1924년 폐렴으로 사망하고 국장으로 치뤄진 그의 장례에는 당연히 그의 곡,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포레의 곡들이 일찌기 타지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그의 곡의 특징이 될 수 있는데 의외로 그는 교향곡 등의 대작보다는 실내악이나 가곡, 독주곡 등의 소규모의 곡들을 주로 작곡한 이유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의 곡들은 하나같이 잔잔하고 명상적인 곡이어서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다. 또한 단순한 음률로 몇 번을 듣다보면 곡 전체를 외워서 허밍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격조높은 우아함을 지닌 프랑스 파리를 생각하면서 가브리엘 포리의 곡을 듣는다면 더욱 가깝게 와서 닿는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Romance Sans Paroles Op17 no3)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Romance Sans Paroles Op17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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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정은실 칼럼리스트
정은실 칼럼리스트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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